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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술 위의 순록들/김경주
 나금숙    | 2015·12·13 18:15 | HIT : 1,330 |
내 입술 위의 순록들


김경주



순록들 내 입술 위를 걸어간다
혀로 발아래 얼음을 핥으며 간다

얼음 밑에 거꾸로 떠올라 있는
누군가의 희멀건 발바닥을 핥는다

순록은 내 입술을 뜯어 먹는다 차가운 나무뿌리를,
얼어 죽은 어린 순록의 뿔에서 돋아난
푸른 잎사귀들을 뜯어 먹는다

귀가 뜨거워지면 발아래 얼음이 녹아내리므로
순록은 누군가 누웠던 내 입술 위 나뭇잎에서
사랑을 나누지 않는다

순록은 내 입술 위에 앉아
수평선이 혀에 얼어붙을 때까지
서러운 혼잣말을 한다

나는 눈들의 지느러미에서 태어났어요
나는 설국雪國으로 끌려가서 낙관주의자들의

부드러운 암각暗角이 되기도 했어요
속눈썹을 몰래 얼음 위로
한 마리씩 떨어뜨리며
되돌아오는 길을 표시했지요

행렬 속에서 길을 잃고 얼음 위에 잠들어버린 순록은,
봄이 되면 내 입술 위의 따뜻한 얼음이 된다
살얼음 아래로 녹아 내려 내 입술이 된다

서서 죽은, 순록의 귓속에서 새벽초원이 흔들린다

산 채로 땅 구덩이에 던져진,
수천 마리 매장된 소牛들의 울음을 들으려고

내 입술 위의 벼랑 끝에서
순록들은 시퍼렇게 아슬아슬하다




  순록과 입술이 일치하는 것은 입술 순 자뿐이다. 그럼에도 이 시에서 입    술은 얼음, 나무뿌리로 변주된다. 고매한 사슴의 뿔을 연상시키는 나무뿌리 말이다. 이 시에서 순록과 입술은 하나다. 동의어다. 순록은 순수를 지향하는 시인의 영혼, 누군가 앉았던 얼음이나 얼음 나뭇가지에서는 사랑을 나누지 못한다. 오로지 너는 내 운명, 같은 사랑을 원한다. 얼음 위에 댓잎자리를 모아 얼어 죽을 망정 사랑을 나누기 원하는 불 같은 정념은, 얼음을 녹아내리게 하므로, 얼음 위의 사랑을 말하는 시인은 단 한번 죽음의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다. 순록은 사실 설국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영혼을 거기로 내모는 것이다. 낙관주의자, 낭만주의자로 끝날 수 없는 전쟁터를 알기 때문에 시인은 다시 돌아오기 위하여 속눈썹으로 자기 정체성을 심어놓고 가는 것이다. 낙관주의자들의 안이한 행렬 속에서 길을 잃은 시인의 영혼은 결국 시인의 언어로 살아남고자 한다. 산채로 땅 구덩이에  던져진 수천마리 소 울음은 지금 매장당하는 세상이 온몸으로 내는 울음소리, 그 울음은 시인의 입술을 통해 시퍼렇다. 입술 위의 벼랑 끝에서 시퍼렇게 아슬아슬하다. 살아 있다. (단평 나금숙)


계간 <시산맥> 2014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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