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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법 / 박제천
 나금숙    | 2015·08·03 15:32 | HIT : 1,604 |
박제천 시집 『달마나무』 (문학아카데미에서)

자연법
 
내가 오늘 투명한 물 속에서
투명한 바람이 된 네 얼굴을 꺼내듯

물도 바람도
오래 물 속의 모래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울었던 듯
아가미도, 눈알도, 비늘도 젖은 듯

물이 되어 물인 너를 찾아다니다가
이미 불이 되어 연기로 몸을 감춘 듯
불이 되어 불인 너를 찾아다니다가
이미 흙이 되어 대지의 숨소리를 듣는 듯

바슐라르 식으로
동시에 바람이고 물이고 불이자 대지가 되어
바람이자 물이자 불이자 대지인 너랑
비로소 공기인 우리 몸을 되찾은 듯
공기 속에 떠돌며 입맞춤을 하였고, 하나가 된 듯
 
오래도록 어둠 속 돌 속 내 얼굴을 기다려 오듯
오래도록 동심원 속 네 얼굴 속 바람을 놓아주듯

투명한 바람이 되어 투명한 바람 속을 떠도는 듯

*
벽암록 제59칙 [趙州至道]



나는 벽암록의 부처는 모른다. 그러나 ‘All- inclusive Christ’라는 의미의 그리스도는 안다.
그런데 어쩐지 닮아 있어 놀랐다. 내가 10살 때부터 배워 온 경전은 성경이다. 경전 하나를 궁구하는 데 일생이 걸린다는 것은 복스러운 소명이다. 많은 과정을 거쳐서 나도 이러한 배움이 고난이 아니라 놀이, 즉 대상을 누리는 것임을 아는 데까지 왔다. 하나님도 예배하는 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입맞추기를, 접촉하기를 원한다고 하셨다(‘예배,경배’의 히브리어 원어의 뜻). 구약의 신명기를 보면 그는 좋은 땅이며, 좋은 땅의 샘과 분천, 시내이다. 밀과 보리, 포도, 무화과, 석류, 감람나무와 꿀이다. 더구나 꿀은 동물의 생명과 식물의 생명에서 나온 것이다.(이 의미의 광대함이란!) 그 땅의 광물은 돌과 철과 동이다. 가장 중요한 초점은 우리가 이러한 것을 먹고 마시며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합일은 먹는 데 있다. 생각해보라. 따뜻한 불이 켜진 저녁식탁에서 잘 차려진 밥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우리는 정찬을 연구하지 않고 즐긴다. 박제천 시인의 달마나무에는 이러한 저녁식탁의 느긋함과 안식이 있다. 거기에는 충돌이 없다. 물도 불도 바람도 흙도 공기도 자기 실재로서 다른 원소와 잘 녹아 있다. 화해된 만물이 함께 모여 논다. 서로를 내어 준다. 서로에게 섭취당하는 즐거움을 이미 안다. 놀자. 시인들이여. 자신은 자신으로서 존재하면서 다른 것들을 관조하며, 또한 합일될 수 있는, 진정으로 놀 줄 아는 시인들을 만나고 싶은 열망에 나는 늙을 수 없다. 홍안의 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영원히 놀 수 있다. 달마나무는 만유를 주렁주렁 달고 놀 수 있는 그늘이다. 애쓰고 힘쓰는 자들이여, 가서 한 번 쉬어보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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