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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현무암 - 서안나
 나금숙    | 2014·12·12 13:37 | HIT : 1,465 |
개인적인 현무암



서안나


1

현무암은 구멍이 많다
대낮에도 벌과 나비기 드나든다.
눈과 코가 가렵다 울다가 웃는다

2

돌의 구멍은 돌이 무언가를 품으려던 생각
돌은 돌 아닌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누르면 피가 툭 터진다
이쯤에서 사내는 피가 묻은 돌을 던진다

3

돌을 던지면 공중에 불이 붙는다
공중은 불타는 구멍
불타는 공중은 불타는 대로 두어라
사내가 장자의 구멍타령을 소리내어 읽은 탓이다

4

사내가 불타는 허공을 걸어 돌 속에 얼굴을 묻는다 돌 속에 곡식을 심고
돌옷을 입고 돌 항아리를 부수어 진흙의 아이들을 빚는다 진흙 인간으로
솟아 태양의 아이들을 안아 들었다 해가 둘이다 혜성가를 부르리라 해를 물리치면
돌 속에 숨결이 돌 것이다 사내가 다시 구멍을 소리 내어 읽는다

5

사내가 돌과 돌을 부딪쳐 불을 꺼낸다 불의 칼로 봉인된 죽은 자들의 이
마에 문신을 새기면 진흙 아이들이 사흘 동안 찾아오리라 떡과 고기를 먹
이리라 진흙 아이들이 당신의 눈과 코와 입과 귀 일곱 개의 구멍에서 만
근의 화살처럼 느리게 날아다닌다 사내의 믿음이 그랬다 현무암은 아침이
면 얼굴이 많다 녹말가루처럼 생각이 많다 울다가 웃는다

                    

  현무암은 회색, 흑색의 분출 화산암이다. 풍화되지 않은 현무암은 흑색 또는 회색이지만, 철분의 산화에 따라 붉은색이나 자주색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현무암은 구멍이 많다. 듫끓는 용암이 지표로 흘러넘칠 때. 급속히 냉각되면서 많은 구멍을 갖게 된 것이다. 시인은 아마도 지천으로 널린 현무암을 자신의 고향 제주에서 많이 보고 자란 것 같다. 그래서 개인적인 현무암이라고 썼을까? 그러나 이 현무암은 개인적이지만은 않다. 개인의 삶은 보통의 삶을 대표하기도 하고 포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인의 퍼스나인 이 현무암은 구멍이 많다. 본래 용암이었을 때 무언가를 품으려던 욕망이 이렇게 뻥 뚫린 허공으로 드러나 있다. 욕망은 피와 살이 있는 따뜻한 육체와 같아서 누르면 피가 툭 터진다. 시인은 어쨌든 자기를 말하려고 돌을 택한 것이다. 신성과 자기표현, 즉 ‘스스로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의 상징인 돌을 통해 자신의 원형을 본 사내, 즉, 시인의 아니무스는 피가 묻은 돌을 어쩌지 못하고 던진다.
돌을 녹여 들끓게 한 욕망의 불꽃은 질료가 없는 허공에도 불을 붙인다. 이제 공중이 불타는 구멍으로 확장된다. 생멸生滅의 이치, 자연의 이치를 구멍을 통해 노래한 장자의 구멍에 비견된다. 시인 속의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측면의 완성을 나타내는 자아인 사내는 구멍타령을 소리 내어 읽는다. 천지간에 생사의 이치를 소리 내어 온 우주에 읽어 들리는 것이다. 구멍 속에 일어났다 스러지는 바람의 소리를 장주가 문자로 형용했듯이 사내는 소리 내어 읽음으로 구멍의 현상에 조응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시인의 퍼스나, 더 정확히 이해하자면 시인의 아니무스는 불타는 허공을 가로질러 간다. 돌 속에 자기를 심는 것이다. 돌이 지닌,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성질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돌 속에 얼굴을 묻고, 돌 속에 곡식을 심고 돌옷을 입고...  아, 시인은 유한한 이곳에서 저곳의 영원성을 향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이 지상에서 나를 투사하고자 해도 나를 심을 곳은 이 돌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것도 이미 1000도 이상으로 듫끓고 녹아보았던 구멍 많은 현무암, 달리 말하면 시인에게 현무암은 우주의 모든 애환을 통과해 본 영원한 어떤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더 나아가 돌 항아리를 부수어 진흙의 아이들을 빚고 시원始原으로 돌아가 혼돈의 상징인 진흙으로 진흙 인간을 생성시키는 것이다. 노래가 승했던 신라시대에 노래를 지어 불러 해가 두 개로 나타난 재앙을 물리친 사실을 들어 시인은 시가詩歌의 힘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시의 힘은 드디어 돌 속에 숨결을 돌게 한다. 용감하게도 시인은 이제 신의 영역에 들어 온 것이고 인간 창조를 담당하는 여와가 된 것이다.
다시 구멍을 소리 내어 읽는 - 이것은 일종의 제의이다 - 시인의 아니무스인 사내는 돌과 돌을 부딪쳐 불을 꺼낸다. 여기서 “봉인된 죽은 자들의 이마에 문신을 새기는” 불의 칼은 부활을 나타내는 징표이다. 부활의 영역에서 신생 진흙 아이들이 태어났지만, 만물의 어미로서 사흘 동안 떡과 고기를 먹이지만, 만근 화살! 로도 채우지 못하는 여자의 구멍, 7개의 사람의 구멍에 부는 바람은 말 그대로 만근이다. 무겁고 느리다. 그만큼 현실은 무겁고 쉽지 않은 것이다.
슬픈 시인이여, 이제 차라리 얼굴 많은 녹말 가루이거라. 지상에 살면서 시간 속에 살면서 카이로스(Kairos)를 경험한 당신은 얼굴이 많다. 이 돌, 신성과 인성을 지닌 이 돌은 물에 잘 풀린다. 누구에게라도 용해되는 녹말가루가 된다. 그래서 얼굴이 많다. 누구라도 제 얼굴을 보게 된다. 누구의 울음도 웃음도 된다. 그렇다. 만물 속에 편재한 시를 누리며 시 속에서 환원과 순환과 생성, 무한의 성분을 맛보게 하고 뛰놀게 한 이 시를 만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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