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터문학회-커뮤니티

 

     

 

 

 

 

 

 

 

 

 

 

 

 

 

 



  자유게시판

  빈터회원문단

  좋은 시를 찾아서

  산문 혹은 평론들

  멀티미디어 포엠

  회원 갤러리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73> 어둠의 겉봉에는 수취인이 없다
 한석호  | 2014·02·20 18:38 | HIT : 2,555 |
동아일보 2013. 3. 4   보도



어둠의 겉봉에는 수취인이 없다
―한석호(1958∼)


시간은
땅거미에 이끌려 한 발짝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다가설수록 무거워지는 나의 걸음 앞에서
마을과 길들은
공손하게 허리를 꺾고 있었다.
지상의 모든 황홀과 빛남이
저처럼 낮게 엎드려 온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나는, 내 안에 품었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으리라 마음먹었다.
누군가에게 보낸 나의 마음들은
밤하늘 광활한 백지에 활자가 되어 빛나고
억새의 늦은 울음을 한 아름씩
산등성이에 뿌리고 있었다.
입동(立冬) 지나면
나의 그리움도 고뇌에 찬 나의 시편들도
억새풀처럼 날려 사라져 가겠지만
살얼음처럼 투명하게 번져가는 밤하늘은
또 누가 쓰고 누가 반송한 소식들로 쌓이는지
나는 그 어둠의 겉봉을 접고 있었다.




땅거미가 내리는 게 어두워지는 건데, 시간이 땅거미에 이끌려 한 걸음 두 걸음 어두워지고 있다니, 첫 두 행부터 상상력과 표현이 신선하다. 전체적으로 어둠의 이미지가 ‘빛나는’ 시다. 시인의 맑은 마음과 밝은 눈이 돋보이는 시정(詩情) 넘치는 시다. 시간(時間)이 흐르며 시간(詩看)이 깊어지고 넓어진다. 밤의 어둠 속에 숨었던 사물들이 낮에는 제 몸뚱어리를 드러낸다. 그것이 빛남의 본디 모습이다. 그러나 ‘마을과 길들은/공손하게 허리를 꺾고 있었다.’ 어둠 속에 제 몸을 숨기고 있다. 그 사물의 몸과 함께 어둑해진 마음은 공손한 마음, 낮게 엎드리는 마음이다. 밤하늘을 백지에, 마음을 활자에 견준 것 역시 참신하다. 그리움이든 시편이든, 누군가에게 보낸 화자의 마음과 사연. 화자가 본 밤하늘은 커다란 편지지다. 그는 제 마음과 사연을 담은 편지를 어둠이라는 편지봉투에 넣고 그 겉봉을 접는다. 그러나 밤하늘은 화자를 포함한 숱한 사람들의 마음과 사연으로 여전히 아로새겨져 있을 것이다. 수취인이 없어서 반송된 마음과 사연들로.


황인숙 시인
하태린 좋은 시를 잘 음미했습니다.

14·03·08 16:30  

한석호 좋은 말씀 주셔서 고맙습니다. ^^

14·04·10 08:32  

장인수 몇 번을 읽게 되네요. 선명한 이미지, 명징한 이미지들이 시선을 확 사로잡습니다. 멋진 시입니다.

14·08·13 08:05  

한석호 장인수 동인님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14·08·20 18:53  

  
  저작권 관련 유의사항 알림
786   무릎으로 남은- 유병록  김효선 16·03·01 1693
785   이은주* - 임재정  김효선 16·02·13 1563
784   몰락의 아름다움 - 허연 1  심종록 16·01·21 1634
783   태몽의 물체 / 조연호 2  나금숙 15·12·13 1408
782   내 입술 위의 순록들/김경주  나금숙 15·12·13 1386
781   자연법 / 박제천  나금숙 15·08·03 1675
780   거울과 필름이 남긴 말/채재순  김정수 15·06·08 1661
779   등 -박일만 1  서정임 15·06·05 1915
778   나를 지우기 시작한다 - 김진돈 1  김명은 15·05·26 1634
777   그리운 명륜여인숙 - 오민석  김명은 15·04·02 2079
776   배시시 - 김정수 1  김명은 15·02·17 1736
775   류머티즘 rheumatism- 나석중 1  김명은 15·02·17 1540
774   사행천 - 홍일표  나금숙 15·02·11 1445
773   그네가 그네를 탄다 - 김길나  김명은 15·01·07 1638
772   개인적인 현무암 - 서안나  나금숙 14·12·12 1515
771   사고다발구역 - 김정수  김정수 14·07·10 1837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73> 어둠의 겉봉에는 수취인이 없다 4  한석호 14·02·20 2555
769   [이향지] 방울토마토 ⟸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2013년9월11일) 1  정 겸 13·09·11 3355
768   괜찮은 시조 2수 1  이복현 13·09·11 3140
1 [2][3][4][5][6][7][8][9][10]..[40]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GGAMBO

 

 

 

 

 

 

 

 

 

  COPYRIGHT ⓒ 2000 - 2018  POEMCAF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