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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차애 시인 시평 / 나금숙
 나금숙    | 2016·12·03 00:56 | HIT : 608 |
면식범을 기소하다
     -  안차애 신작시


나금숙



여기 앉아, 인간을 만든다.
내 형상에 따라
나와 닮은 한 종족을,
그는 괴로워하고, 울고,
즐기고, 기뻐한다.
그리고 너희를 존중하지 않는다!
마치 나처럼.

니체는 그의 아름다운 저서 <비극의 탄생>에서 이렇게 썼다. 괴테가 창조한 프로메테우스는 거인의 경지로 인간을 올려놓고 신들에게 인간과 결속하도록 이 시처럼 거침없이 말하게 한다고.....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얻은 지혜를 가지고 신들의 실존과 한계를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 즉 예술가는 예술가가 되는 기쁨, 어떤 불행도 견딜 수 있는 예술적 창조의 자족감을 구가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최상, 최선의 것으로 인하여 고통과 근심의 홍수를 대가로 치르게 된다고 말한다. 세상의 심장부에 들어 있는 모순은 그에게 서로 상이한 세계들, 즉 신적 세계와 인간 세계의 혼란스러운 뒤섞임으로 나타난다. 개별적인 것이 보편적인 것이 되려는 충동, 즉 개별화의 속박을 넘어서 하나의 세계 본질 자체가 되려고 하면, 개별적인 것은 사물 속에 감추어진 근원의 모순의 피해를 당하게 된다. 그는 모독의 죄를 짓고 고통받는 것이다. 여기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아폴론적인 것과 아슬아슬하게 조화될 때, 현상의 세계 전체를 소생케 하는 영원하고 근원적인 에술의 힘으로 나타난다. 이 현상세계의 한가운데에는 소생한 개체화의 세계를 삶 속에 붙잡아두기 위하여 새로운 미화의 가상이 필요하게 된다. 이 환상은 불협화음이 가진 고유한 본질을 아름다움의 베일로 은폐한다. 이것이 아폴론의 진정한 예술 의도다. 우리는 매 순간 실존 일반을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고 그 다음 순간을 체험해보고 싶게 만드는 아름다운 가상의 저 수많은 환영들을 아폴론이라는 이름으로 포괄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 개체는 모든 실존의 기초, 즉 세계의 디오니소스적 기반에 대해 정확하게 아폴론적 미화의 힘에 의해 다시 극복될 수 있는 양만큼만 의식한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예술충동은 영원한 정의의 원칙에 따라 엄격한 상호 균형 속에서 자신의 힘을 발휘해야만 한다. 디오니소스의 힘이 격렬하게 고양되는 곳에선, 우리가 이를 체험하고 있는 것처럼, 아폴론도 구름에 몸을 감추고 이미 우리 곁에 내려와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고 니체는 강조하고 있다.
안차애 시인은 이 만상 속에 깃들인 불협화음을, 그 아슬아슬한 균형 속의 예술충동을 <모비딕>이라는 소설을 텍스트로 하여 쓰고 있다. 이 균형미는 이 소설의 속의 파도처럼 우리의 차가운 이성을 햇빛 속의 파도처럼 덮쳐오기도 하고 썰물이 빠져나간 새벽 바다처럼 고요하게도 한다.


인상학도 한때의 우화일 뿐
굴곡진 이목구비에 기댈 수는 없다
 
얼굴이
마침내 제 표정을 버리고 흐린 벽으로 남았을 때
이마는 묵묵히 깊어지는 상형이다 
흰 배의 선폭처럼 이맛전에 물결과 바람을 놓을 때
고래는 부력의 방향으로 가만히 떠오른다
 
수부들의 이마에 주름살 몇 개 새겨지듯
해류가 서로 엉기다 외눈박이 허리케인을 일으키듯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득이고 몇 철이 동시에 어른거리는 것은 다만
고래의 이맛전에서 일어난 일
 
가장 먼 봄이 이슥토록 머물다 간다
이번 생의
흐린 문장들은 사이렌의 노랫소리보다 독하다
시간은 내내 역류 중이어서
수면 위엔 양피지의 주박이 손금처럼 환하다 
 
당신의 수심이 깊어질 때
표정 바깥이 표정으로 그만 갸웃해질 때
흰 두루마리의 오랜 헌사가 있다
               - 「사랑스런 당신의 이마 - 모비딕 풍으로」 전문

  인상학은 직관과 경험에서 나왔다. 아마도 통계학적인 쪽에 가까울 테고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수없는 사례가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보편적인 “우화”를 끌어내기까지 개별화는 죽음을 맛보게 된다. 새로운 생성을 위해서 개인은 자신의 돌올한 굴곡진 이목구비를 버리고 마치 둠벙 속의 한방울 빗방울처럼 흔적이 없어졌을 것이다. 그 둠벙이 마침내 “제 표정을 버리고” 줄줄이 늘어선 흰벚꽃나무와 조응되어 마치 “흐린 벽”처럼 빈 화면이 되어줄 때, 세계라는 이마는 비로소 “묵묵히 깊어지는 상형”, 즉 세계의 모상이 되는 것이다. 얼굴이라는 이 우주의 바다에 흰 배가 떠오른다. 바다가 시공간에 “물결과 바람을 놓을 때”, 시인의 의지를 표상하는 고래는 이 물결과 바람에 순응한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부력에 자신을 맡긴다. 모든 비극적 상황에서 순전히 소극적인 행동을 통해 자신의 생애 전반에, 아니 생애 너머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최고 경지의 능동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수부들(이 단어를 들으면 앙리 미쇼의 “바다”라는 시가 떠오른다.)의 이맛전, 고래의 이맛전이라는 것은 사실 시인의 생애라는 텍스트인 것이다. 시인의 생애에 정연하게 흐르던 해류가 서로 엉긴 적이 있다. 사람을 잡아먹는 신화 속의 외눈박이처럼 흉포한 허리케인이 분 적이 있었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기다려야만 오는 “가장 먼 봄”이 어느덧 왔다가 “이슥하도록 머물다간다”는 것은 그 폭풍 속에서 침잠하는 법을 이윽고 배웠다는 것이다. 이 배움은 “주름살 몇 개”로 완성되어가고 텍스트 속의 문장들은 낮술처럼 흐릿하다. 그러나 그 문장이 얻어지기까지 극복해야하는 타나토스의 유혹은 “사이렌의 노랫소리”보다 독하다. 시간은 역류하고 말고! “이번 생”의 시인의 시간은 역류해야 한다. 그 거슬러 감은, 걸어가야 할 전생의 손금을 수면 위에서 물결로 환하게 보여준다. 이마, 수면, 양피지, 두루마리가 객관적인 텍스트라면, 주름, 주박, 손금, 표정, 헌사는 시인 자신이 텍스트 속에 체화된 주관의 언어요, 문장들이다. 구성이나 정신이 대범하고 활달한 이 시는 아마 속편을 갖고 있는 듯, 할 이야기가 더 남았다. “이마가 묵묵히 깊어지는” 서사를, “흰 두루마리”에 적을 수밖에 없는 고귀한 “헌사”로서 오래 쓰게 될 것이다.
 

서귀포시 연동 이중섭 박물관
가로 10cm 세로15cm의 은박지 그림 속 선율들이
환한 물밑 세상처럼 투명하다
 
아이들, 큰 게, 발가락이 예쁜 아내
머리통 큰 여름의 높은음자리표
파도소리가 자꾸 가닿아 적시는 은모래 빛 오선지에  
온음으로 매달리는 달콤한 과즙        
야윈 발부리 근처에 주저앉는 해안선의 연속음계들
 
가난한 선들은 색을 풀어놓을 방이 없이
실꾸리처럼 풀려나가는 외줄 마음의 변주뿐이어서
 
내내 간질거리는
잉잉거리는, 발 동동 구르는
감치고 공그르고 눙치고 솟구쳐 오르고,
건너가고, 멈칫멈칫 건너오지 못하는
온 사랑의, 연민의, 출생과 연보의, 입구이자 출구인
 
부적 같은 연서 한 장
혹은 부치지 못한 유서 한 줄

몹시 목가적이어서 대체로 비현실적인
게처럼 천천히 걷는 선이어서 아직도 닿지 못한

              
           - 「 반짝반짝한 유서遺書」전문
  
  이제 그의 이마는 이렇게 은박지 그림에서 환한 물밑 세상을 본다. “파도소리가 자꾸 가 닿아 적시는 은모랫빛 오선지에” 해안선의 연속음계를 그린다. “온음으로 매달리는” 과즙은 가족들과 가졌던 달콤한 추억들이다. 시인은 이중섭의 심상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고 있는 것이다. “색을 풀어놓을 방”인 육체를 잃은 선들은 내내 ‘간질거리는, 잉잉거리는 그리고 발 동동 구르는“ 육신을 얻고 싶다. “감치고 공그르고 눙치고 솟구쳐 오르”는 감정의 서사는 외줄 마음의 변주일 뿐이다. 아! 모든 정신은 그를 담아줄 육체를 얻고 싶다. 시인은 쏜살같이 “건너가고”는, “멈칫멈칫 건너오지 못하는” 사랑의 속성을 알고 있다. “출생과 연보”, “입구이자 출구”인 그 비현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상실의 안타까움, 되찾고 싶은 안타까움을 부적으로 써서 절대정신에 연서를 보낸다. 연서는 부칠 대상을 현실 세상에서 찾지 못하고 유서 한 줄이 되었다. “반짝반짝한” 목가적인 은박지 그림에서 시인은 “게처럼 천천히” 옆으로 걷는, 그러나 영원히 닿지 못하는 부조리한 꿈을 목격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은 “아직도 닿지 못한”, 영영 닿지 못할 시인과 우리들의 피안인 것이다. 연서가 유서가 되는 비극적 가상을 우리는 현실 세상에서도 목격한다. 세월호 안에서 아이들은 “엄마 사랑해” 라고 문자를 보내는데 그 다음은 영영 없었다. 연서와 유서의 경계가 사라지는 여기에서 시인과 우리는 어느 덧 조바심 속에, 불안 속에 연서를 부적이라고 적고 있는 것이다. 니체의 아포리즘처럼 모든 진리를 안전을 위한 것이다. 이중섭의 사례에서처럼 미적 현실반영에서 그때그때의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을 형상화의 계기 속에 생생하게 드러내지 않고서는 중요한 예술작품이 탄생한 적이 없었다. 예술가가 그 점을 의식하고 창작하든 아니면 초시간적인 어떤 것을 만들어낸다는 믿음으로 과거의 양식을 계승하여 과거로부터 길어 올린 ‘영원한’ 이상을 구현한다고 생각하든간에, 참된 예술성을 구현한 작품은 작품이 나온 시대의 심원한 노력들의 산물이다. 진정한 예술적 형상화의 내용과 형식은 - 다름아닌 미적 차원에서 - 발생의 토대와 분리될 수 없다. 객관현실의 역사성은 다름 아닌 예술 작품 속에서 주관적   〮객관적 형태를 얻는다.〮 이중섭이 전쟁 포화를 피하여 떠난 제주도의 피난 시절은 시인의 요동하는 현실과 오버랩되었을 것이고, 목가적인 것이 오히려 비현실이 되어버린 척박한 현실을 시쓰기로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의 시쓰기는 쓰는 행위 자체가 현실 참여요, 시인은 쓰는 것으로 역사 현실에 대한 당대성을 얻는 것이다.

양파는 또 낯익은 얼굴에 포위되었다 
겹겹이 쌓이거나 누르는 얼굴
벽처럼 빽빽이 드리워진 얼굴
눈을 질끈 감아야 삼켜내는 얼굴
 
  팔순이 훨씬 넘은 아버지는 천식과 폐기종으로 사흘 걸러 입원을 한다 마도로스처럼 담배를 여전히 입에 물고....... 언니는 다단계 금융에 빠져 밤이면 전화를 한다 천만 원, 아니 백만 원이라도 없어? 큰 시누이의 뇌혈관이 꽈리처럼 부풀어 올랐다고 시어머니는 울먹이며 전화를 한다 아직 아이들도 어리잖니........ SNS는 풍선처럼 위기를 키우고 내가 알던 면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볼록렌즈에 눈을 너무 가까이 가져다 대면 뿌연 흰 벽면의 바리케이트다 마주보는 거리 너머에서만 웃음은 얇은 속껍질처럼 투명하게 피어오른다 면식은 거리보다 밀도가 커지면 무너진다 다시 돌아올 길을 지우면서 파들거리는 매운 냄새의 생목을 지그시 누르면서
 
 밤이면 낯익은 얼굴을 벗겨낸다 범죄의 알리바이는 가장 낯선 얼굴에 있다는 듯
얼굴은 뜯어낼수록 점점 매끈한 입술의 낯짝으로 웃어댄다 면식범의 소행은 가중치 처벌 분까지 보태질 거라는 듯
                   - 「면식범面識犯」전문

  루카치는 “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객관현실, 역사발전의 과정 속에서 형성되어가는 분화된 반영형식들은 삶 자체에서 자신의 토대를 발견하고, 궁극적으로 충족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서 객관현실의 풍요로운 중심이 되는 것은 일상생활의 현실이다 .미적, 예술적 반영의 순수성은 복잡하게 뒤얽힌 일상의 형식들과는 뚜렷이 구분되면서도, 이와 동시에  한편으로는 이러한 경계가 끊임없이 교류하거나 유동한다. 이 두 가지 분화된 반영형식은 일상생활의 요구에 의해 발생하여 거기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며, 또한, 미적 반영의 수많은 결과물들은 다시 일상생활의 표현양식들과 뒤섞여서 일상생활의 표현양식들을 더욱 더 포괄적으로 만들어내고 더욱 분화되고 풍부하고 깊이있게 함으로써 일상생활 자체를 더욱 부단히 고양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양파는 이러한 경계가 끊임없이 교류하거나 유동하는 하나의 유기체이다. 벗겨내도 또 익숙한 얼굴인 면식이다. 매운 냄새로 인해 생목을 눌러야하는 현실이 또한 시적 현실이요, 미적 현실이다. 양파같이 벗겨내도 그저 똑같은 현실 그 자체가 본질상 역사적인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총체성 안에서 파편화되고 분열화된 일상을 지루하게 그리고 있다. 그래서 “면식은 거리보다 밀도가 커지면 무너”지는 것이다. 일상생활의 현실을 반영하되 보다 멀리 보는, 총체성을 보아내는 망원렌즈가 필요한 것이다. 시인이 “밤이면 낯익은 얼굴을 벗겨내는 것”은 이른바 “고통의 내재화”에서 벗어나기이다. 자신 속에서 고통의 원인을 찾는 나약함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적극적인 행동이다. 스스로 아니면 관습에 의해서 도덕에 의해서 자신을 처벌하던 가책에서 벗어나 익숙하고 길들여진 낯짝을 과감히 버린다. 시인은 무작정 노예로 복종하던,
“겹겹이 쌓이거나 누르는 얼굴
벽처럼 빽빽이 드리워진 얼굴
눈을 질끈 감아야 삼켜내는 얼굴“을 벗겨내고 밤이면 새로이 강한 자아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고요의 한가운데로 자신을 밀어 넣어 고요의 중심이 “되고, ” 꼬리 아홉 개 쯤 떼버린 여자로 있“다(「비밀의 속도」). ”검은 등뼈의 굴곡으로 우멍해져“  ”어느 지층까지라도 내려가겠다는 듯이(「즙」).....
이렇듯, 안차애 시인의 시적 상승은, 비극에 대항하여 주체로서 힘을 내재화하는데 있으며, 비극에 따르는 고통이라는 결과물을 자신의 익숙한 얼굴로, 퍼스나로 취하기를 거부하는 강인함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의 적극적인 시적 몸짓의 귀추를 지속적으로 주목해보고 싶다.


<시담>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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