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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민 시집 <구구>
 이성목    | 2016·07·02 15:53 | HIT : 1,199 |
                                - 고영민 시집 『구구』

                                                        이 성 목

3. 구구, 그렇게

  슬프다. 아무도 없는 빈 운동장에 나가 한없이 울다가 울려다 본 하늘, 슬픔이 은하처럼 눈부시다. 그때 귀밑머리 솜털을 흔들며 바람이 지나갔던가? 어떤 아득한 시절의 소리가 들려왔던가? 구구, 기억이 기억을 뱉어내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봄날 저녁이었다

        그녀의 집 대문 앞에
        빈 스티로폼 박스가
        바람에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밤새 그리 뒹굴 것 같아
        커다란 돌멩이 하나 주워와
        그 안에
        넣어 주었다
                        -「첫사랑」 전문

  어린 시절 ‘소나기’읽으며 거기, 눈물을 삼키며 만지작거렸던 주머니 속 돌멩이처럼 사랑은 그렇게 아득하게 흘러가서 이제는 기억으로만 구구, 뱉어 낼 수 있는 것이 되었을 때, 고영민의 시는 그 안타까운 사랑을 시작한다. 그럼에도 그의 사랑은 구체적이고 세밀하다. 찌릿찌릿 전해지는 모호한 전율이 아니라, 존재가 분명하고 사랑이 선명하다.
  ‘코에 호스를 꽂은 채 누워 있는 사내는 자신을 반쯤 화분에 묻어 놓았다 자꾸 잔뿌리가 돋는다(중략) 어떤 씨앗은 700년 만에 깨어났다는구나 노모는 중얼거리며 길어진 사내의 손톱과 발톱을 깎아’(「식물」 중에서)주는 노모, ‘문어 한 마리를 사가지고/어머니를 찾아간다/가자, 문어야’(「문어」 중에서)하며 어머니를 찾아가는 아들, ‘그 늙은 개를/월동아, 하고 불렀’(「옛일」 중에서)던 아버지처럼 가족이라는 이름의 흑백사진을 어루만지듯 사랑이 손바닥 따뜻하게 묻어난다.
  그렇게 드러내는 시적 대상들은 보듬어 안지 않으면 안 될 비극적 존재들이며, 시인은 슬픔의 본질을 구체적이며 적극적으로 대면함으로써 해원(解寃)의 깊은 눈물 안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학교를 빠져나와 공중화장실에서/긴 복대를 풀어놓고/숨죽인 채 쌍둥이 사내애를 낳고 있는/여고생’(「구구」 중에서), ‘누가 개에게 불을 붙였나/달려도 달려도 불을 떨어지지 않고 개는/무작정 또, 달리’(「개가 사라진 쪽」 중에서)는 광경은 비극을 지나 참혹하다. 여기서 고영민 시인의 시선은 그를 외면하지 않고 오래도록 바라본다. 무엇을 할 수 있어서, 무엇인가 해 줄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늘 깊은 눈으로 그것을 오래 아프게 보고 있는 시인, 그는 시라는 형식으로 되돌아오는 슬픔을 담담하게 받아내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난 것인지도 모른다.

   고영민 시의 또 다른 시선은 가족과 운명을 함께하는 짐승(동물)들에게 다가선다. 시집 속에 등장하는 짐승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가족의 다른 이름 일 수도 있고 자신의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장치 일 수 도 있을 것이다.
  표제시 「구구」에서 비둘기는 가질 수도 버릴 수 없는 존재이며, 그 존재는 사생아를 낳은 여고생과 빈 유모차를 밀며 지나는 할머니의 존재로 환치된다. 정작 아이를 낳았지만 유모차는 비어 있으며, 비둘기는 끊임없이 비둘기를 뱉어내는 비극적 상황을 병렬 구조로 배치하여, 존재들은 그곳에 존재하지만 각자의 존재에 충실할 뿐 서로에게는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모습이거나 가족의 또 다는 모습일 것이며, 다만  그것들을 바라만 보아야하는 시인이 있을 뿐이며, 그 존재들이 시인 자신의 내면에 살고 있는 비극적 자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몸에 불을 붙이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개(「개가 사라진 쪽」), 늙은 어머니의 보신을 위하여 데려가는 문어(「문어」), 자신의 죽음을 알리기 위하여 혼신의 힘으로 기어갔던 구더기(「구더기」), 갈비뼈가 고스란히 드러난 고독한 개(「혼자 사는 개」), 솥에서 저 혼자 끓고 있는 백숙(「백숙」)처럼 온전히 생이 비극적인 존재들, 시인은 그 존재들을 ‘우두커니’ 바라보거나, 묵묵하게 데리고 가거나, 아무 일 없다는 듯 먹는다.
  짐승의 이름으로 그려지는 비운의 존재들이 죽음이라는 형식으로 내 곁을 떠나간다. 혼신의 힘을 다해 그 슬픔을 건너가면 살아남은 자들은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바라보고, 먹어야 한다. 그것은 시인 이전에 생명이 가지는 숙명이며, 아무 일 없이 잘 살아가는 것이 드높은 사랑을 완성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양배추 쌈에 밥을 먹고 나간 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잠들어 있는 어린 두 딸을 잠깐 내려다보았다 누가 끼어들겠다고 깜빡이 신호라도 보낼라치면 그는 오히려 속도를 더 높였다 이면도로 옆 오르막길에 그는 1톤 생수 화물차를 세워놓고 뒤쪽에 있다가 밀려내려오는 자신의 차를 보고 붙잡아 세우려다 뒷바퀴에 깔리고 말았다 기울어진 물, 차가 멈춰선 지점의 아래에는 젖은 사거리와 횡단보도가 있었다 그가 바퀴 지지대가 된 덕분에 더 이상 차는 흘러내리지 않았다
                        -「봉천동엔 비가 내리는데 장승배기엔 눈이 온다」 전문

  자신의 차를 붙잡아 세우려다 자신이 깔려 죽은 가장, 그가 바퀴 지지대가 되어 그 아래 횡단보도 지나는 많은 사람은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 차라리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지나가 버렸을 것이다. 자신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잠시 다가섰다는 사실, 그림자를 한 가족의 아비가 몸으로 막았다는 사실은 정작 시인의 시선 안으로만 들어온 것이다.
  그렇게 시인은 세상의 이면을, 그림자 속을 들여다보는 존재이다. 그것을 들여다 볼 뿐이지 수퍼맨처럼 위험에 처한 그들을 구할 수는 없는 존재이다. 우두커니 바라보고, 묵묵하게 먹어치우며 저 깊은 내면에 슬픔을 아로 새기고 있는 것이 시인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슬프고, 그 슬픔은 우리가 일찍이 측은지심이 사랑이라고 여겼던 한 근거이기도 하다.

  극한의 슬픔이 지나고 나면, 그 슬픔은 어디서 온 것이며 그 슬픔의 실체가 무엇인지 선명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 실체와 근거를 외면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부둥켜안으려는 몸부림을 한다. 고영민의 시가 ‘서정’이라는 깊은 연못에 빠지지 않고, 분명하게 연잎을 밀어 올리고 연꽃을 피워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집의 모든 내력이 옹기종기 아랫목에 모여/서로를 다독일 쯤,/빈집은 그제야 쉬 그칠 것 같지 않던/울음을 뚝, 멈추’(「우는 집」중에서)는 것처럼 한없이 울고 난 다음 울음을 멈추고, 빨간 플라스틱 바가지에 모이를 가득 담아 세상의 마당으로 나선다. 그리고 그 모이를 흙바닥에 흩뿌리며 ‘남의 옷을 벗겨가는 종자’들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할 웅크린 목숨을 부른다. 구구, 그렇게!

        미처 거두지 못한 배추들이
        추레한 행색으로 겨울밭 한가운데 앉아 있다
        옷을 몇 겹이나 껴입었는지
        누렇게 해진 옷 속으로 또 몇 겹의
        낡은 옷이 얼비친다
        누더기를 벗겨본다
        한 겹, 두 겹, 세 겹, 네 겹……
        몸은 얼어 있고
        옷은 종잇장처럼 얇아져 있다
        삼동(三冬)을 나기 위해 배추는 지난가을부터
        푸른 잎사귀의 오을 껴입었다
        머리띠를 둘렀다
        남의 옷을 벗겨가는 종자(種子)는
        인간뿐이다
        배추 속 한가운데 어린 배추가
        목숨처럼
        웅크리고 있다
                -「얼음옷」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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