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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 시집 <말하라, 어두워지기 전에>
 이성목    | 2016·07·01 12:54 | HIT : 1,169 |
                                - 노혜경 시집 『말하라, 어두워지기 전에』


                                                        이 성 목



2. 세상, 참

  『뜯어 먹기 좋은 빵』을 앞에 두고 며칠을 끙끙 앓아도 뜯어 먹을 수 없었던 그의 시를 다시 꺼내어 말랑한 귀퉁이를 골라 한 점 뜯어내 봐야 할까. 아니면 『캣츠아이』의 알 수 없는 찢어진 눈빛들을 떠올려 봐야할까. 시집 『말하라, 어두워지기 전에』의 첫 장을 열기 전까지 복잡한 생각을 떨치지 못했었다. 그러다 문득 열어본 첫 장과 마지막 장에 배치된 두 편의 시를 통하여 마주하는, 목덜미가 써늘해지는 이 결의만으로도 시집을 그냥 덮어 두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오래도록 떠나지 않았다.

          나는 목을 잘라 조용히 시렁에 걸어놓고 그 방을 나왔다. 이로써 나의 할 일은 끝나야 한다는 듯이

  (아, 나는 얼마나 자주 목을 잘랐던가 시렁엔 이미 잘라낸 내 머리가 그득한데 이번으로 끝낼 수 있을까)
                                -「강으로 가기」중에서

        이미 당신은 문밖에서 저문다
        굳센 어깨가 허물어지고 있다

        말하라, 어두워지기 전에
        내가 가고 있다고
                                -「말하라, 어두워지기 전에」전문

   이 두 편의 시는 마치 수미상관처럼, 가장 앞 선 자들과 뒤처진 자들 모두 이 어두운 시대에 다시 어깨 걸고 가자는 출정가처럼 들린다. 마지막 출정을 앞두고 스스로 목을 내려놓은, 이번에는 ‘끝’을 내야하는 암흑천지에 ‘내가 가고 있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 늙은 투사의 모습과도 같다. 이 투사의 모습은 시인의 삶과도 일정한 궤적을 같이 한다.

  노혜경 시인은 ‘전위적’이다. 그것은 내가 그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삶의 일부와 시의 일부가 만들어준 선입견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구체적 실천 대안을 제시하는 시민운동가였고 정치인이었으며 혁명가였다. 반면 그는 세계관을 초현실주의적 형식을 통하여 세상에 드러내는 시인이었다. 이런 그에 대하여 현실과 초현실을 아우르는 스펙트럼을 가진 시인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삶과 시가 유리된 시인으로 이해할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말하라, 어두워지기 전에』을 통하여 보여주는 그의 삶과 시편들을 아우르는 데는 이보다 잘 어울리는 단어는 없을 것이 분명하다.

  먼저 그의 「칼」을 먼저 꺼내 든다. ‘칼인 줄 알았더니 모래’인 칼, ‘봉인된 집에 가득 찬 침묵’이었던 것이, ‘침묵이 그칠 때 비로소 칼이 되는 모래’인 칼이야말로 어두워지기 전에 하려는 그 말의 내면일 것이다. 목을 잘라 시렁에 내려놓은 그가 걸어가야 하는 세상은 칼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세상이며, ‘유리병을 깨었다. 아니 깨어들었다/톱니처럼 칼날 베어 물고 자해와 폭력의 어중간한 각오를 버리는 초록색 소주병’(「유리를 깨다」중에서)을 들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다.

  ‘허공에 걸어둔 저 무쇠의 방 마지막 층계/하루하루 여위어가는 노동의 헛된 발걸음이 걸린 저 무쇠 벼랑의 난간/엣지, 시퍼런 베임, 날선 칼끝’(「생의 엣지에서」중에서)인 세상의 엣지에서 그는 ‘김진숙’을 만난다. ‘김진숙’도 그와 다름없이 시렁 위에 목을 잘라 내려놓아야만 내려올 수 있는 무쇠방에 있었다. 그것으로 오랜 그의 투쟁을 끝낼 수 있다면, 그리하여 ‘그는 나를 몰고 왔다. 비겁한 계단 앞’(「생의 엣지에서」중에서)에서 우리 모두가 참담해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불러 낼 수 있다면, 마침내 ‘칼’이 모래가 되는 날 어떤 베임도 없이 우리가 얼싸 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리운 당신을/그리워하지 않은 죄가 너무 깊어서/잠 밖으로 쫓겨나 비의 탄식’(「장엄미사」중에서)처럼 저 깊은 가슴 속으로부터 탄식이 끊이질 않는 세상을 그는 살고 있다.

  ‘모가지가 꺾여 후두둑 마른 꽃잎을 놓치는/저 마른 꽃대궁이를 아파하지 마라’(「불가능에 대한 잠언-우리들의 사랑법6」중에서)고 말한다. 그것은 침묵을 경계하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말하게 하는 불가능에 대한 잠언인 것이다. 반성과 성찰, 새로운 실천에 대한 결기로 뭉쳐진 「우리들의 사랑법」 연작은 이 어둡고 거친 세상에서 사랑이 어떻게 태어나는가,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혁명하는가를 보여준다.

        모든 글자들은 새로 쓴 글씨
        글자와 글자 사이 빈틈을 찾아 새기는
        최초의 얼룩

        그렇게 모든 사랑은 첫사랑
        밟히고 분질러진 꽃대궁 사이 간신히 잎사귀 하난 남은 것처럼
        그렇게 새로 시작하는 것

        (중략)

        사랑,이라고 말한다. 입술 사이로 핏물이 진다.

                                -「모든 사랑은 첫사랑-우리들의 사랑법1」중에서

   ‘사랑, 이라고 말하’는 순간 ‘입술 사이로 핏물이’ 지는 것이 첫사랑이며, 시인은 이렇게 ‘핏물’ 머금은 사랑을 품고 거칠고 오래된 세상을 건너간다. 사랑이야말로 혁명의 원천인 것이다. 나를 던지고, 내 목을 잘라 놓고 ‘끝’을 보려고 나서는 길의 출발지인 것이다. 한 시대가 저물고, 또 다른 시대가 왔으며, 다시 그 시대는 어디로 갈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혼돈의 시대를 지나가는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혁명할 것인가. 과거 우리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하여 투쟁했던 그 세상과 오늘은 닮았지만 다르다. 그러므로 시인은 말한다. ‘혁명은 왜 실패하는가’라고.

  여기서 시인의 말을 잠시 들어 본다. ‘사랑, 용기, 행동. 이런 일련의 아름다운 말들 속에는 비겁함, 머뭇댐, 뒤돌아서기, 놓아버리기 같은 깊은 틈새가 있다. 틈새를 이해하기 위하여 눈을 감고 들여다본다. 손이 길다란 촉수가 되고 다시 칼이 되어 더듬고 저며본다. 캄캄하다.’(「시인의 말」중에서)
  ‘말하는’것이 아니라 ‘손이 촉수가 되고, 칼이 되어 더듬고 저며’내는 길을 가려하는데, 여전히 세상은 캄캄하다. 그렇다 캄캄한 세상을 건너는 방법은 손을 더듬거리며 건너는 것이다. 그렇게 손이 촉수가 되고, 칼이 되어 세상을 건너며 ‘내가 가고 있다고’ 어둠의 저편에서 울고 있을 어린 꽃들에게 큰 소리로 말하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에게 세상은 ‘아 재기랄 내 입/닥치게 하려는 듯/입안으로’(「내린다」중에서)눈 내리는 곳이다. ‘멀리 어디선가에서 사이렌 소리 자꾸 들린다/이 소리는 누군가의 불행을 알리는 소리’(「평택 가는 사이렌」중에서)가 차츰 가까워지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불행의 징조를 세상에 알려야할 사명을 부여받은 시인이 아닌가! 시인은 말하는 자이며, 틈새를 만지며 내일을 꿈꾸는 자이다. 이 불행이 여기에 끝나기를 기도하는 자이다.

        유리 호롱 속에 켜진 활촉불처럼 우리는 환합니다
        어떤 화살도 우리를 꿰뚫지 못합니다
        그들의 과녁을 애초에 틀렸습니다
        그들은 상한 새를 향해 활을 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질주하는 표범입니다
        그들은 시든 꽃을 따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상하는 민들렙니다
        그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거울과 싸우면서 그것이 우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싸움이 끝나면 그들도 알게 될 것입니다
        푸른 지구에서 태어나 밝은 별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칼산 불바다를 통과하는 중인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전문

  그들은 이 시인이 꿈꾸는 나라를 모른다. 시인과 ‘상한 새’와 ‘시든 꽃’이 꿈꾸는 내일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진실로 민감하다면 알 것입니다/(중략)/봄이 오기 위해 해야 할 이 많은 일들이/우리의 이 깊은 한숨이/얼마나 숨차고 가쁘고 후달리는 것일지’(「바람이 말했다」중에서) 모르는 그들은 이 시인이 가진 자그마한 소망마저 허락하지 않을 것인 분명하다. 시인이 이 시집을 통하여 보여준 한 노동자의 꿈도 그들은 모를 것이다. 결국, 그가 사랑을 전투가처럼 부르는 것이 상호 소통을 열망하는 몸짓인 것을 그들만은 모른다.

  ‘언덕 위에/작은 집 하나 짓고 싶었네/창문 하나와 굴뚝 하나를 가진 조촐한 집을/창가에는 눈물 한 방울/(중략)/그냥 작은 집 하나를 원했을 뿐인데’(「언덕 위의 작은 집」중에서) 한탄하듯,  ‘그냥 내 직장으로 돌아가려 했을 뿐인데’ 세상,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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