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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라는 이름의 붉음
 이성목    | 2010·04·07 02:02 | HIT : 4,709 |


  806번 도로에서


  보폭은 넓게, 속도는 느리게, 걸음을 옮길 때는 발아래 어른거리는 바람을 밟지 말 것, 바람에 걸려 넘어지지 말 것. 이것은 당신이 말한 806번 지방도로를 걸어가는 방법의 일부입니다. 다하지 못한 당부 때문인지 맥을 놓은 걸음걸이 때문인지 햇살의 부드러운 갈기가 무중력 상태로 공중에 떠오르는 그 몽환과도 같은 봄날, 아무 잡념도 근심도 없이 짧은 봄그림자처럼 당신을 한참이나 따라갑니다.
  목포에서 해남으로, 자꾸만 앞으로만 가는 젊은 노새의 고삐를 움켜쥐듯 멈춰 세운 거기, 멀리서 스며든 영암호의 물빛일까, 남쪽바다의 쪽빛일까, 푸른 녹청자 조각들이 아득하게 마지막 빛을 풀어내는 환영이 보입니다. 그 끝에서 붉게 타올랐던 생의 불가마를 생각합니다.
  <산이>의 푸른 산이, 푸른 바다가, 푸른 깊이가 모두 가마터에 넘실거렸을 불의 혀로 빚어진 것은 아닐까요. 점토의 말랑함에 거센 바닷바람을 섞은 바탕흙을 만들고 다시 거친 유약을 시유한, 당신의 불같은 뜨거움이며 붉음의 내력을 처음으로 깨닫습니다. 잡은 손바닥으로 뜨거운 전율이 전해져 옵니다. 아, 그렇지요. 푸른 것들의 어미는 다 붉은 여자입니다.




  붉은 구릉지



  당신은 낮은 산 같기도 하고 크고 완만한 무덤 같기도 합니다. 삶이며 죽음이, 그 부침이 함께 공존하는 구릉지입니다. 천지간에 나는 낮은 사람이어서 당신은 보이기도하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있기도하고 없기도 합니다. 구릉지를 오르내리는 동안 <금송>이며 <노송>이며 <송천>이며, 참 많은 소나무를 곁을 그냥 지나쳐서, 그 이름의 뾰족함에 마음이 찔린 듯 아픕니다. 이름조차 다 안을 수없는 높낮이며 깊이로 마음의 좁다란 길 하나를 목숨처럼 움켜쥔 나를, 당신은 붉은 황토밭 이랑을 만들어서 맨발로 불러들입니다. 그 봄날, 당신의 살 냄새를 맡으며 한 번은 오르고 또 한 번은 내려가며 <산이>의 붉음에 온 몸을 붉게 태웁니다. 마늘 촉이었을까 양파의 푸른 대였을까, 눈물이 매워 그 연두색 목숨을 생생하게 기억하지 못합니다. 당신을 기억해도 <산이>를 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변명처럼, 눈물에 붉은 황토를 개어 흙벽돌 하나 만들어 당신에게 보냅니다. 훗날, 초가삼간의 바람벽이 될 그것, 내가 지어야할 붉은 당신의 몸입니다.




홍매화



  <산이>이라는 이름은 산(山)이 둘(二)이라 <산이>라고 합니다. 참 무심하지요. 이름을 부르는 일이 저렇게 무심하지요. 내가 당신을 부를 때도 저렇게 무심했던 것일까요. 당신을 홍매화! 그렇게 불렀던 것을 <산이>의 호명처럼 순박한, 무심하게도 투박한 부름에 비할까요. 당신은 조용히 눈을 흘깁니다. 햇살이 이마를 찡긋하게 합니다. 아닙니다. 내가 당신을 부르는 일은, 햇살이 나뭇가지를 깨물어 가지마다 잇빨자국처럼 발갛게 맺힌 꽃망울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붉고 쓰라린 연애의 비유입니다.
  빛 좋은 봄날을 골라 잠시, 농원은 문을 열어둡니다. 사람들은 농원을 공기처럼 환기합니다. 내가 그곳에서 홍매화! 당신의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농원의 이름은 술잔으로나 쟁그랑 거리던 것이었습니다. 술파는 주인은 꽃으로 사람들을 이렇게 불러들입니다.  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은 비밀도 아니어서, 꽃과 술이 다 여기 출신입니다. 술이 또한 붉음의 부족입니다. 붉음의 부족이었던 당신을 내가 불렀던, 그것은 무수히 흩날리는 흰 꽃, 연분홍빛 붉음도 다 사라진 그 흰 빛의 꽃잎이 난분분 날리는 그 속에서 드물게 혹은 외진 곳에 홀로 그토록 붉어 있었던 까닭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거기 그렇게 한그루 나무로 서 있던 것이, 그 붉은 발등에 입맞춤이 오래된 연애의 시작이었습니다.








{여행지 메모}



[진산리 청자요지(珍山里 靑磁窯址)]


전남 해남군 산이면(山二面) 진산리에 있는 고려 초기에 청자를 굽던 가마터. 민수용 생활도자기를 굽던 가마터로, 완도 앞바다에서 인양된 청자들은 이곳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토기와 청자와의 관계, 흑유와 청자와의 관계 연구, 그리고 녹청자(綠靑瓷) 편년연구(編年硏究)에 귀중한 사적지이다. 가마터는 산이면 초송리 남쪽 옛 해안에서 진산리의 해안에 이르는 6km 가량의 해안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보해매실농원]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예정리에 있는 (주)보해의 매실 농원. 1979년 전남 해남군 산이면에 국내 최대 규모인 약 14만평의 매실농원을 조성하고 매화나무 14,500주를 심었다. 매화꽃이 만개할 3월말 즈음이면 매실농원 전체가 하얀 눈밭을 연상시킬 정도로 매화꽃이 만발하여 산이면 예정리 일대가 연분홍 빛에 쌓여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보해 매실농원에서는 매년 매화꽃이 필 때면 일반인들에게 농원을 무료 개방하고 있다.


한혜영 매화향이 솔솔 실려오는 듯해요.
매화꽃이라고는 볼 수 없는 플로리다에서 참으로 횡재를 했습니다.
이런 글들이 어서 책 한 권 분량이 되어, 묶였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부려봅니다.

10·04·07 09:54  

이타린 806번 도로에서 뿐이 아니라
2010년4월9일 오늘 하루도
/보폭은 넓게, 속도는 느리게, 걸음을 옮길 때는 발아래 어른거리는 바람을 밟지 말 것, 바람에 걸려 넘어지지 말 것./을
상기하며 걸어가는 하루가 되고 싶습니다.

10·04·09 11:37  

이태관 정말 좋네요. 성목이 화이팅!

10·04·24 11:30  

김영준 몇 해 후 느리게 느리게 걸어볼 것으로 점 찍어 두지요.

10·04·26 20:01  

  
   흐르던 강, 멈추어 서는 강 [4]  이성목 10·05·02 4685
  봄, 빛, 수채화 [3]  이성목 10·03·29 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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