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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빛, 수채화
 이성목    | 2010·03·29 14:05 | HIT : 4,749 |


  개울이 다시 물소리를 내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서로에게 번지는 햇살 같았습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번지던 햇살이 산허리를 어루만질 무렵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푸른 산에 번지는 연두, 그 여린 싹눈 같았습니다. 산은 주름치마처럼 넓게 자락을 펼쳐 우리를 받아주며, 백암산 봉우리를 봉긋하게 밀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그 꿈길 같은 쌍계루 계곡길을 오르며 서로의 허리를 어루만지고 있었습니다. 손가락 하나하나에 깍지를 끼워주며 우리 온 몸이 연두 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게 되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다르다>고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그늘에 살얼음이 반짝이는 봄날이었습니다. 양지바른 길섶에 제비꽃 한 무리, 그 손목을 잡고 하마터면 울 뻔 했던 봄날이었습니다. 먼 나라의 전쟁 소식도 그곳에서는 잠시 멈추고 양지쪽에 자리 잡고 앉는 시간이었습니다. 그토록 작고, 그토록 여리고, 그토록 환한 제비꽃은 생의 처음이었다는 과장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다르다>는 그 이유 때문이었겠지요. 당신도 알고 계셨지요.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는 한 시인의 말. 그는 다시 이렇게 노래합니다. “사랑이란 그런 거야//봄은,/제비꽃을 모르는 사람을 기억하지 않지만//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으로는/그냥 가는 법이 없단다.” (안도현 『제비꽃에 대하여』 중에서)



  그 자줏빛 마음을 책갈피에 끼우고, 산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니 유리처럼 맑은 개울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수면 위로 반짝이며 걸어오는 당신을 보고 있었습니다. 화선지 위에 맑은 연두색 물감 한 방울 떨어진 것처럼 온 산에 번지는 당신을 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앞을 그냥 가는 법이 없던 제비꽃은 우리에게 낮고도 아늑한 눈을 가지게 했습니다. 개울물에 묵은 산을 씻어 다시 채색하는 바람의 붓 끝, 그것은 우리에게 서로를 어루만지는 손의 따뜻함을 가지게 했습니다. 당신의 젖은 눈, 눈물 반짝이게 하는 햇살이 없었다면 당신을 어디에서 보았겠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몸에는 잎이 무성합니다. 낮은 그늘을 만들어 몸에 번지던 햇살, 뜨거워진 하루를 쉬게 하기도 합니다. 지나는 시간에게 귀를 기울입니다. 제비꽃처럼 작았으나, 우리 떨리는 손으로 어루만졌던 봄날은 어느 개울을 건너고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그날이 온 몸 구석구석 환하게 밀려옵니다. 산자락에 안긴 개울, 개울에 잠시 나와 얼굴을 씻던 이팝나무 한 그루, 그 곁으로 완만하게 흘러내리던 길, 그 길 위에 우리 발자국 다 지워지고 없을 지금도, 당신 그늘에 등 구부리고 앉아 제비꽃의 눈과 바람의 손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그런 순간 당신은 세상의 가장 깊은 곳에서 시작하여, 이른 봄날처럼, 봄의 햇살처럼 마음으로 번져듭니다. 그런 당신은, 당신이라는 이름의 떨림은 차라리 온 몸 터질 것 같은 전율에 가깝습니다.







{여행지 메모}



[백양사]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백암산에 있는 절.  1400여년전 백제시대의 고찰로 유구한 역사와 주변의 빼어난 경관으로 이름이 높다.
백양사는 정읍의 내장사와 함께 단품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이 백양사는 매표소에서 계곡을 따라 쌍계루까지 이어지는 진입로가 단연 아름답다. 애기단풍이라 불리는 작은 단풍잎이 선홍빛으로 물드는 가을 깊은 날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이 계곡 길을 봄빛이 완연한 날, 진초록 위에 연초록이 번져가는 날, 개울물 소리를 들으며 제비꽃과 눈 마주치며 가는 봄날의 백양사 가는 길은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진 비경이기도 하다.




한혜영 이 글을 읽으려니 제비꽃을 모르고는 정녕 봄을 맞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봄빛이 들려면 봄빛이 번지는 계곡을 찾아가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 같기도 하고요. 삭막한 가슴에 봄이 오기는 영 글럿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긴 봄빛 번지는 계곡도 없고 다시 물소리를 내며 흐르는 시내도 없고, 다만 똑같은 햇살에 똑같은 바람에 똑같은 파도가 출렁거리기나 할 뿐이어서...

10·03·30 09:20  

장현숙 수채화를 보는 듯 합니다. 연두빛으로 번지는 봄 날의 아득함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듯 한...

10·03·31 04:41  

이타린 유리창을 따라 들어온 햇살이 베란다에서 봄의 향연을 펼치는 정오, 주체할 수 없으리만큼 초록이 짙어가고 있을 백양사 계곡으로 마음만 달려갑니다. 개울물 소리가 들려오고 제비꽃 무리의 손목을 잡고 울고 싶을 만큼 여린 글에 한동안 머물다 갑니다.
/제비꽃처럼 작았으나, 우리 떨리는 손으로 어루만졌던 봄날은 어느 개울을 건너고 있을까?/

10·04·06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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