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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 상상력의 신비로운 성분
 장인수    | 2015·10·03 13:38 | HIT : 782 |
시전문월간지 유심 (2015년 10월)

  

<시가 지나가는 길목 / 천체>

  

제목: 우주적 상상력의 신비로운 성분

시인 장인수


  

● 인간은 모두 별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우주를 밑거름으로 만들어진 생명이다. 인간이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미미한 존재 하나를 위해 전 우주가 필요했다. 연세대 이석영 교수는 천문학을 ‘하늘의 문학’이라 부른다. 그만큼 천체 우주는 인문학의 영역과 밀접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 하느냐.’(정호승 「우리가 어느 별에서」), ‘달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세요.’(황진이의 한시「夜思何 (야사하)」)처럼 저 별은 너의 별이고, 이 별은 나의 별이다.


안드로메다 대성운

너머서

직접 온 것들,

  

여치나

내 사랑하는 사람이나 어머니나

  

여치는

  

몇 억 광년 전부터

꽃잎으로 흩날린다

  

거미도 거미줄도

긴꼬리제비나비도

  

몇 억 광년 전부터

-김영승,「초제(醮祭)」 전문


별을 향해 지내는 제사를 초제(醮祭)라고 한다. 우리 모두는 우주에서 태어나 우주로 돌아가는 존재다. 인간은 지구에 갇혀서 채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존재다. 우리 인간의 뼈와 가죽과 지방질은 대부분 탄소와 산소로 구성되어 있다. 초신성 폭발이라는 극적 사건을 통해 탄소와 산소가 만들어졌고, 생성된 자신의 내부 물질을 우주에 흩뿌려 놓고 그 물질이 우주공간을 떠돌다 중력의 힘으로 행성을 만든 것이 지구가 된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조차 빛의 속도로 날아가도 몇 년이나 걸리는 먼 거리에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 몸을 구성하는 물질이 얼마나 장구한 세월을 여행했을지를 생각하다 보면 정신이 아찔할 정도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는 ‘초신성의 후예’이고 우주적 사건의 ‘극적이고 경이로운 산물’이다. 김영승 시인은 인간도, 여치도, 거미도, 거미줄도, 긴꼬리제비나비도 모두 초신성의 후예라는 것을 알고서 이 시를 쓴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별의 후예다. 별을 향해 제사를 지내는 것은 당연한 행위다. 살아있음도 초제요, 죽음도 초제인 것은 아닐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윤동주의 노래도 초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그리움은 물질이다.

-<물질담론>을 통한 우주적 상상력


1,000㎞ 밖에 있는 아버지와 핸드폰으로 통화하면서 20미터 앞에 있는 개 짖는 소리를 듣고 있다면, 아버지의 목소리와 개짖는 소리 중 어느 것을 먼저 들을까? 정답은 아버지의 목소리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299,792,458km/s, 개 짖는 소리는 0.34㎞/s의 속도로 달려오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 몸무게가 50㎏인 여학생이 롤러코스트를 탄다면 몸무게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롤러코스트의 가속도에 따라 여핵생의 몸무게는 500㎏ 이상이 되기도 한다. 지구상에서 1㎏인 돌의 무게는 중력이 지구상의 1/6밖에 되지 않는 달에 가지고 가면 1/6㎏이 된다.

‘전자 도약’이라는 용어가 있다. 컴퓨터, 자동차, 네비게이션 등등 금속 물질들의 지대한 도움을 받으며 인간은 살아가고 있다. 휴대폰 속에 있는 소형 금속 수신기에서는 우리 이웃과 내 영혼을 끊임없이 호출하고 송출하고 있다. 금속 물질의 세계가 인간을 채굴하고 있다. 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금속은 가장 활발한 생명력을 지닌 존재들이다. 1초에 수천 ㎞를 달리는 솜씨는 기본이고, 인간의 몸을 순식간에 통과한다.


  

샤갈의 하늘에는 비가 내리지 않지만

갈릴레오의 시선이 머물렀던 목성에는

강물이 흘렀던 자국이 있다

  

실체가 없는 흔적이

먼저 실체가 되는

영하의 무기질 세계

  

부패성 물질이 없는

무기질 세계의 순수


아득함을 혼자서 흘렀을 물길

무섭다! 시의 길.

-허만하,「목성에 강이 있었다」전문

  

‘부패’라는 물질 현상은 유기물이 세균에 의해 쪼개져서 흙의 구성 성분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목성에는 유기물이 없다. ‘부패’라는 생명 현상이 존재하지 않는 무기질 세계야말로 진짜 ‘순수 세계’라고 한다. 지구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서정이기에 허만하 시인의 시는 천체물리학적 원리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실체가 없는 흔적이/ 먼저 실체가 되는/ 영하의 무기질 세계'를 존재의 근원에 비유했다.

물질의 풍경이 인간의 풍경이다. 피스톤의 폭발음, 기어의 마찰음, 엑셀의 회전음, 압축공기가 새는 소리 등등이 우리의 손발을 조종하고 우리의 눈귀를 장악한다.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에 따라 사회현상이 변화하는 것이고, 그 뒤를 이어 예술이 새로운 사회현상을 재빨리 진단하고 함께 변화에 동참한다. 법과 제도와 규범은 천천히 변화한다. 따라서 물질 담론이 서서히 핵심 담론이 될 가능성이 크다. 허만하 시인은 ‘물질을 통한 서정의 새로운 탐색'을 시도한다. 그 바탕에는 물질 담론에 바탕을 둔 우주적 상상력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자연과 우주적 질서에 대한 섬세하고도 과학적인 관찰을 바탕으로 삶의 단면을 새롭게 해석한다.

  

1

지는 꽃잎 한 조각의 무게를 계측하는 저울의 정밀성은

젖은 눈에서 떨어지는 짭짤한 물 한 방울에 경악한다.

별빛보다 맑은 물이 머금고 있는 태고의 바다.

  

2

꽃잎이 바람에 밀리고 있다. 바람에 몸무게를 맡기는 순간

꽃잎은 얼음이 될 때의 물처럼 몹시 긴장했을 것이다.

  

꽃잎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눈송이처럼 하늘에 떠 있는 지구가 꽃잎을 끌어 당기기 때문이 아니다.

  

극약보다 미량이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구도 그때 지는 꽃잎 쪽으로

끌려든다.

이론과 현실의 틈새는 아득하다.

꽃잎이 바람에 밀리고 있다.

  

거리를 사이에 둔 사물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것은 외로움 때문이다.

육체가 없는 물질이 머금고 있는 그늘진 외로움. 외로움의 극한에서

물질은 행동한다.

하르르 지는 꽃잎과 지구 사이에 서려 있는 아득한 그리움을 시는 본다.

그리움은 틀림없는 물질이다.

-허만하,「그리움은 물질이다 -아이잭 뉴튼에게」전문

  

‘그리움’, ‘외로움’이 물질인가? ‘만유인력’은 곧 ‘그리움’이라는 ‘물질’이라고 허만하 시인은 해석한다. 가볍디 가벼운 꽃잎과 지구는 서로 그리움이라는 물질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시인은 아득한 그리움때문에 떨어지는 꽃잎에서 만유인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리움이라는 저울로는 잴 수없는 물질을 본다고 뉴튼에게 이야기 한다. ‘거리를 사이에 둔 사물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것은 외로움 때문'이라고 적은 시인은 우주의 법칙 안에서 삶의 정서를 캔다. 꽃잎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눈송이처럼 하늘에 떠 있는 지구가 꽃을 끌어당기기 때문이 아니라 ‘극약보다 미량이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구도 그때 지는 꽃잎 쪽으로 끌려'버리기 때문인 것이다. 우주라는 광대한 차원에서 보면 지구 또한 그 넓은 우주에 흩날리는 꽃잎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수많은 외로움의 조각들인 별, 해, 달. 서로 비추고 아쉬워하는 것은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것들이 물질의 형상으로 태어나지만 몇 백년을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 소멸한다. 소멸 앞에서 모든 것은 외롭고, 그리운 것이다. 억만 년을 살아가는 것이 외로움이고 그리움이다. 외로움과 그리움이야말로 영원한 참된 물질이 아닐까.

  

  

● 머리카락의 교감신경으로 우주인과 교감한다

-<몸 철학>을 통한 우주적 상상력

  

메를로 퐁티는 ‘몸’을 탐구한 철학자다. 그는 “몸은 순수한 물질도 아니고 순수한 정신도 아니다. 몸은 물질과 정신이 함께 태어나는 곳이다...... 나는 몸을 가진 동시에 몸이다.”라는 말을 했다. 인간의 몸은 소우주다. 정신과 영혼도 몸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넓은 의미에서 몸은 물질이다. ‘나’를 고용한 ‘몸’은 60조의 세포로 이루어진 대형 지주회사이고, 온몸에 진드기와 거미, 이, 벼륙을 키우고 있는 동물원이며 온갖 곰팡이가 서식하는 식물원이다. 최소 100만개를 넘는 내 몸의 털들은 0.05㎜의 표피를 뚫고 하루 평균 0.2㎜씩 자라고 매일 70개 이상의 머리카락이 목숨을 잃는다. 오늘의 ‘나’를 구성하는 원소 중 4분의 3은 1년 이내에 사라진다. 따라서 ‘나’는 매일 죽는다. 그리고 또 공동체를 통해 영원토록 살아남는다. ‘나’는 수천년 인류 역사의 산물일 뿐 아니라, 수억 년 지구 역사의 산물이기도 하다.

동양의 사상은 자연과 인간을 유기체적 등가물로 보았다. 천체는 큰 우주다. 인간은 작은 우주에 해당한다. 더 나아가 지상에 존재하는 돌이나 꽃, 곤충, 바람, 새들에 이르기까지 작은 우주로 인식한다. 이러한 사유는 큰 우주와 작은 우주가 서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과학 문명의 발달에 따라 달이나 별은 저 먼 신성한 존재에서 인간 가까이 친근한 존재로 다가왔다. 현대시에서 우주적 상상력은 점점 더 인간의 삶 깊숙이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있다.

  

엘프족을 닮은 여자가 있다

이름 모를 행성과 충돌하고

흩어진 가계를 수습하기 위해

가위 하나만 달랑 손에 쥐고

지구별로 야반도주한 여자

건조한 내 머리에 물을 뿌리며

숙련된 손길로 싹둑싹둑

한 달간의 근심을 가지 치는 여자

웃자란 생각들을 좌우로 보며

마침맞게 중심을 잡아주는 여자

이따금 새순으로 피어난 꽃말들이

그믐처럼 그윽하게 입가에 스미는 여자

언젠가 여자는 나를 쓸어담고

그녀가 왔던 행성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레이스가 달린 은하수 돗자리를 깔고

흩어졌던 가족들을 불러 모아

내가 지금 잠시 무릎에 손을 얹고

그녀의 손길을 따뜻하게 받아들인 것처럼

머언 작은 별 이야길 해줄 것이다

그녀는 지금 내 머리 위에

비행접시처럼 떠서 우주의 먼지들을

구석구석 헹구고 있다

-김산,「은하 미용실」전문

  

별의 내부는 대부분 액체와 기체로 이루어진 물컹한 성분이라는 것, 엄청 뜨겁다는 것, 1,500만도가 넘는 뜨거운 출렁거림을 방출하는 별이 생명체의 구성 성분이 된다는 것 정도는 상식이 되었다. 원소로 쪼개면 인간이나 별이나 미생물이나 암석이나 모두 비슷한 성분으로 구성된 유사 종족이라는 것도 이제는 상식에 해당한다. 우리의 삶은 우주의 일부분이다. 우리의 삶은 우주의 성분이다.

머리카락은 교감신경인가? 부교감신경인가?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은 촉수같이 생긴 것을 꺼내서 동물의 수염, 꼬리, 털 교감신경에 연결시키면 말과 새와 나무들이 서로 교감을 나눈다. 신경교감장치를 통해 여러 생명체에 인간의 영혼이 들어가 서로 교감하고 마음을 나눈다. 이러한 설정은 메를로 퐁티의 <몸의 철학>과 교집합을 이루고 있다. 김산 시인의 「은하 미용실」을 읽으면서 미용사들은 영화 <아바타> 속의 나비족이 아닐까라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머리카락으로 다른 생물과 교감하는 나비족의 능력을 지구의 미용사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인간의 머리카락에도 교감신경이 있어서 다른 존재와 접촉을 하면 감정과 신호를 교환하는 것은 아닐까? 미용사를 다른 행성에서 온 종족이라고 설정했을 때 이런 상상력은 구체성을 얻게 된다. 지구의 미용실은 외계인의 접선 장소가 아닐까? 미용사들은 지구에 파견된, 지구에 잠입한 외계인들이 아닐까? 미용사들은 어느 행성에서 왔을까? 왜 지구에 파견되었을까? 시인들의 우주적 상상력이 과학 문명의 발달, 몸 철학과 연결되어 더욱 더 시 창작의 중심 성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미용사는 이상한 지구인이다. 어쩌면 지구인을 가장한 외계인일지도 모르겠다.

  

  

● 우주 전쟁 중에 사랑을 나누다

-<SF, 누아르, 하위문화적 요소>를 통한 우주적 상상력

  

2009년 민음사에서 펴낸 『별은 시를 찾아온다』라는 시집에는 별을 하늘의 숯불로 비유한 시, 캄캄한 하늘에 물관을 박겠다는 식물적 상상력을 보여 주는 시, 별을 빛나게 하는 어둠을 다룬 시, 뼈와 가죽과 미지근한 지방질로 채워진 인간의 생애를 희비극적인 우주 서사에 겹쳐 놓는 시 등등 드넓은 우주 현상을 놀라운 사유와 상상력으로 그려낸 작품들이 담겨있다. 천문학이나 지질학은 시 장르와 끊임없이 통섭하고 교감을 지속했다. 그 연장선에서 서동욱 시인의 『우주전쟁 중에 첫사랑』(민음사, 2009년))이라는 시집이 있다. 인간의 다양하고 다채로운 한 감정을 SF의 우주적 상상력으로 그려낸 시집이다.

  

지구인이 할 일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 아버지는 이렇게 써놓고 자살했다 아버지는 지구 최후의 비밀외교관이었나? 나는 원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무리해서 아버지가 이사장으로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이 학년 중반에 그 유명한 헌령고교 집단임신사건으로 뛰쳐나왔다 헌련고교는 남녀 공학을 포기했고 중절한 여학생들은 소식이 두절됐다 아버지는 그 뒤에도 수년간 계속 안보외교를 책임지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어느 성탄절의 금요일 밤 나는, 후배이자 천재 웨이터인 그 바닥 주윤발이 덕분에 부킹한 탤런트 L모양이 집에 가는 것을 온갖 감언이설로 막아내는 홈런 초읽기에 다가섰던 것이다 춤도 좋지만 잠시 대화 좀 하자고 강남역 근처 포장마차까지 모셔 왔는데, 아니 이런, 내가 준비한 뻐꾸기는 듣지 않고 눈이 뚱그레져 안주 접시를 바라보는 L양이다 안주 밝힘증인 줄 알고 나무라려는 순간, 나도 진실을 목도하고 말았으니 삶은 오징어 다리들이 드디어 모선(母船)의 명령을 수신하고 접시 위에서 하나 둘 일어서 우리에게 광선총을 쏘는 것이었다 지구 생물끼리는 다 친구 아니었던가! L모양이 먼저 갑오징어의 푸른 광선에 재가 되고 다음으로 포장마차 아줌마가 멍게에게 희생되었으니, 지구인이 할 일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 아버지 말이 생각나 급히 핸펀을 때렸다 동욱아 원하는 춤이나 맘껏 춰라피웅, 뭐라고요 삼촌? 아버지가 삼촌이라 부르라던 육군 장성도 막 광선에 맞아 전사한 게 분명했다 피웅피웅 안줏거리 오징어들은 분주히 저희 부대 행렬을 찾아 떠나고, 고아가 된 나는 조용히 마지막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이다 태양계 최후의 별처럼 포장마차는 은은한 빛으로 밤을 밝히고, 그런데 포장마차 장막을 걷으며 꿈만 같이 고교 시절의 그녀가 들어서는 것이다 겨우 공격을 피한 듯 이마에 작은 멍 자국을 가진 채. 그녀는 아직 살아 있는 지구 짐승의 신호처럼 하얀 수증기를 뱉으며 말한다 나도 한잔 줄래? 힘없이 주저앉는, 이제는 희귀종이 된 지구인에게 나는 말없이 따라 주었다 남편은 도망치지 못했어, 그러곤 운다 헌령고교에서 쫓겨나던 마지막 날처럼. 지구상의 최후 한 잔이 비워졌을 때 그녀는 졸음을 못 이기고 어깨에 기대온다 나는 지구인의 마지막 단잠을 지키며, 지구방위대를 박살내고 하늘을 가르는 오색 광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름답구나, 가지 않을 거지? 잠결에도 그녀는 팔을 붙잡는다 겨드랑이가 너무 따뜻했고, 나는 가지 않을 거였다……

—서동욱,「우주전쟁 중에 첫사랑」전문

  

위 시는 SF(Science Fiction) 상상력으로 창작된 시다. SF의 특징은 무엇인가?

SF는 사건의 무대가 끝이 없다. 광활한 우주가 무대다. 사건의 진행 방향도 무궁무진하다. 우주 대원들의 스펙터클한 탐사 장면이 펼쳐진다. 미스터리한 존재론의 범우주적인 장엄한 서사가 존재한다. 압도적이고 웅장한 스케일을 보여준다. SF에는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발전도 쇠퇴도, 멸망도 재생도, 모든 것이 함께 존재한다. 세계 멸망에서부터 일상의 이야기까지 그 크기도 다양하다. 한 가정의 생활상에서 우주 전쟁까지 무대의 크기도 다채롭다. SF에는 상상 초월의 다양한 과학 기술 문명의 요소들이 개입한다. 원시세계로부터 먼 미래까지 시간의 스케일이 광대하다. 약한 미래와 강한 미래를 넘나든다. SF는 인류에 대한 목적성과 무목적성, 진화론과 결정론, 선과 악에 의한 우주 전쟁이 등장한다. SF에는 인간과 기계인간, 아바타, 로봇, 괴물, 외계인 등 다양한 생명체가 등장하며, 생명의 최초에서 최후까지 넘나든다. SF는 인류의 기원을 찾는 태초로의 탐사를 한다. SF는 판타지, 무협, 호러, 스릴러, 로맨스의 요소를 복합적으로 갖추고 있다.

인간을 소립자로 미분하거나 그 반대로 확대한다면 외계인처럼 낯설게 보일 것이다. 인간의 애정, 불안, 허무 등등의 고전적 감정들이 천문학적인 세계를 만나면 매우 이질적인 성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합성수지 피부로 탱탱한 젊음을 간직했던 200살 외계인 여성과의 사랑 스토리가 전개되는 시「외계인 애인」, 냉장고 문을 연 뒤 우주선 메인 게이트를 찾았다고 감탄하는 아내(「한밤중의 냉장고」), 공중전화 부스를 운전하며 우주로 떠난 애인(「외계인 애인」), 우주선이 된 전기밥통(「겨울밤, 전기밥통」) 등은 인간이 곧 외계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초신성의 후예들인 인간은 외계인이면서 동시에 무수한 이물질이 혼재된 존재다. 지구에 지금 우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포장마차의 갑오징어와 멍게도 외계인이다. 외계인이 지구를 공격하는 상황에서도 인간은 신파적이다.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고등학교 때의 첫사랑을 만나게 되다. 술 한 잔 마신 그녀는 취중간에 화자에게 어깨를 기댄다. ‘가지 않을 거지? 잠결에도 그녀는 팔을 붙잡는다’. 과학소설이면서 판타지소설이다. 스릴러소설이면서 로맨스소설이다. 장르소설의 하위요소를 뒤섞은 작품이다. 사회에 만연해가는 공감의 부재, 동료 의식의 결핍, 가정과 직장의 균열, 냉소적이고 염세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버므린 시. 인간의 생애를 우주 속 외계인의 서사로 그려보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사랑과 이별과 슬픔과 냉소를 전혀 새로운 요소와 성분으로 간파하고 있다.

  

  

● 지구인은 끊임없이 우주와 연결지으려 한다.

-<동물 이미지>를 통한 우주적 상상력

  

인간이라는 외계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우주와 연결시키려고 한다. 인류는 역사 이전의 선사시대부터 하늘을 관찰하고, 별과 달의 운행을 따졌다. 하늘을 관찰하면서 태초의 신화를 만들었다. 인간의 기원은 우주였다. 인간은 우주와 끊임없이 자신들의 삶을 연결시켰다. 우주는 신비, 경외, 두려움, 창조, 소멸, 탄생, 기원, 힘의 대상이었다. 이제는 우주가 탐구, 여행,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우주는 놀이터이며, 쉼터이며, 일터이며, 전쟁터가 되기 시작했다. 또 어떻게 인식되는가? 시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지구와 우주를 연결하고 있는가? 고양이, 고래 등등 동물적 이미지를 통한 우주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시들을 통해 그 단면을 파악할 수 있다.

  

  

어느 날 너는 내게로 왔어.

두 팔을 뻗어 안으려 하자

너는 낱낱의 원소가 되어 사라졌어.

넌 공중에 빗방울 파종하는 구름이었어.

낮잠 끝에 흩어지는 모래알이었어.

안 돼, 그렇게 가버리는 건 싫어.

안 돼, 네가 없다면

난 미쳐버릴거야.

  

네 살점을 조금만 떼어주면 돼.

네 피를 한 모금만 마시게 해 주면 돼.

아아, 그러면 살 수 있을텐데,

널 사랑할 수 있을텐데,

-장석주,「고양이」전문

  

고양이과(科) 동물들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천구(天球)가 존재한다. 나선형의 은하계가 강체회전운동(剛體回轉運動)을 하고, 성단(星團)이 가득 산포되어 시원의 빛을 발하고 있다. 고양이과(科) 동물의 눈은 별의 눈처럼 반사층을 지니고 있다. 어둠을 막막 안으로 모아들였다가 반사를 시킨다. 모든 빛은 고양이과의 눈동자를 비켜갈 수 없다. 그들의 반사광을 따라가면 담장 위에, 지붕 위에, 능선에 제 3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다. 내부를 꿰뚫고, 외양을 섬세하게 파악하고, 내부와 외양을 둘러싼 우주적 주변을 동시적으로 통찰하는 제 3의 눈동자. 이런 맹금류는 수억 년 시간의 흐름이 축적한 야성의 밀도를 지니고 있다. 맹금류는 수억 년 부정형의 세상을 고독하게 누비던 유동체이며 다양체이다. 맹금류의 고독한 순간주의가 풍경의 내부를 헤집고 다니는 용맹을 낳고, 일탈을 낳고, 탈주를 낳는다. 맹금류는 모든 방향을 출구로 생각하고 입구로 생각한다. 장석주 시인의 많은 시에는 맹금류들이 암행한다.

장석주 시인에게 고양이는 지구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우주적 성분이다. 모든 존재는 낱낱의 원소이며, 흩어지는 모래알의 성분이다. 고양이는 그 이상의 성분을 요구한다. 살점과 피를 원한다. 고양이는 인간의 생활 영역을 배회하면서 때로는 반려 동물이 되기도 한다. 고양이가 인간을 선택한 것일까? 고양이도, 인간도 우주로부터 온 존재다. 고양이를 통해 우주적 상상력을 펼치면서 인간의 근원적 속성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노자, 장자의 철학에 푹 빠져 있는 장석주 시인의 시심은 광할한 우주를 향하고 있다.

  

  

그날 밤

내 방 문턱에 지친 고래 한 마리 떠밀려 들어왔을 때

나는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고래는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쿨럭이며 엄청난 물을 마루 위에 쏟아 냈다

입 벌린 고래의 깊은 목구멍 저편에서

누군가 촛불을 켜 들고 책을 읽고 있었다

  

내 망원경 속으로 떨어져 내린 별똥별 하나

불꽃을 일으키다 타 없어지고

고래 뱃속 낡은 책상에 몸 구부리고 책 읽던 노인은

아무리 불러도 고개를 들지 않더니

책장에 얼굴을 파묻고 졸기 시작했다

  

망망한 우주의 대양을 떠돌다 풍랑을 만나

그날 밤 내 방 문턱에 밀려온

고래 한 마리

  

한동안 쉰 다음 힘을 회복한 고래는

꼬리로 벽을 한 차례 힘껏 내리치더니

다시 물기둥을 뿜어내며 창문을 빠져나가

유유히 밤하늘 저편으로 멀어져 갔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

아득히 멀리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은하계 별 무리 사이를 헤엄쳐 가는 고래가 내쉬는 숨소리였다

  

내 방은 고래 꼬리에 맞은 벽의 금 간 부분만이

선명한 흔적으로 오래 빛나고 있었다

-남진우,「별똥별」 전문


  

별똥별은 깊은 밤 지구를 찾아오는 신비로운 방문객이다. 허공에 짧은 불꽃을 남기고 사라지는 그 별은 존재의 유한성과 우주의 무한성을 계시한다. 그 별을 때로 은하를 헤엄치다 지구에 불시착한 고래로 상상한다면 어떨까. 그 고래 뱃속엔 우주의 오랜 역사를 응시하고 기록하며 책 읽기에 골몰하는 늙은 현인이 한 분쯤 깊은 명상에 잠겨 있지 않을까.

은하수 거친 풍랑을 헤쳐오느라 지친 고래 한 마리가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찰하는 인간의 방으로 들어온다. 남진우 시인의 「별똥별」이라는이 시에서 ‘고래 뱃속 낡은 책상에 몸 구부리고 책 읽던 노인'은 창조의 역사를 쓰기 위해 참고 문헌을 읽는 신(神)일 수도 있고, 과거의 지혜가 담긴 책을 읽으면서 미래를 향해 늙어가기를 반복하는 인간일 수도 있다. 고래는 우주의 항해를 멈출 수 없는 존재다. 유성이니까. 인간의 방에서 한동안 쉬면서 힘을 회복한 고래는 꼬리로 벽을 한 차례 힘껏 내리치더니 다시 물기둥을 뿜어내며 창문을 빠져나가 유유히 밤하늘 저편으로 멀어져 갔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시인의 영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었을 우주의 해조음(海潮音)을 어렴풋하게나마 듣는다. 은하계 별 무리 사이를 헤엄쳐 가는 고래가 내쉬는 숨소리는 지난 밤 우주를 항해하던 그 별의 숨소리다. 고래는 혜성을 닮았다. 자신의 잔해인 운석을 지구에 뿌려 놓고 또 다시 멀리 떠나는 우주고래 한 마리. 우리가 별똥별을 보면서 갖가지 소원을 빌 때, 우주고래의 아이들인 운석은 별똥별 불꽃이 되어 지구로 불시착한다. 별은 동물의 나라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깊은 가을에 물병자리와 물고기 자리 그리고 그 뒤에 고래자리가 나타난다. 이들 별자리는 차지하는 공간이 넓은 데 비해 모두 이렇다할 밝은 별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중에서도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쓸쓸한 별자리가 고래자리이다. 고래자리와 별똥별은 관련이 적다. 하지만 시인의 우주적 상상력은 고래자리에서 노닐던 고래를 유성으로 표현하면서 우주의 거친 숨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 우주적 상상력을 통한 시 창작 수업

–고등학교에서의 시 창작 수업 사례

  

나는 지난 3년 동안 고등학교 교실에서 ‘창의성 신장을 위한 주제중심 통합교과 토론 수업 연구’를 실시했다. 그중에서 몸 철학과 과학적 상상력을 결합한 시쓰기 수업을 실시했다. ‘손을 주제로 한 시와 과학의 만남’, ‘손을 주제로 한 우주적 상상력 글쓰기’ 등등의 수업이 그것이다. 시인과 과학자는 공통 분모를 많이 지니고 있다는 것을 체험하는 수업이었다. 수업 활동을 간략히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 (1단계) 시와 과학의 만남: 은유와 연상

예를 들어 ‘소리의 그림자는 ( )이다. 겨울의 수염은 ( )이다. 구름의 진신사리는 ( )이다.’처럼 ( )에 들어갈 어휘를 찾는 수업을 진행한다.

• (2단계) 시와 과학의 만남 : 시 제목 연상하기

예를 들어 ‘( )은 밤의 야경꾼/ ( )은 어둠 속에 하얀 가면을 쓰고 나타난 태양/ ( )은 하늘에 매달린 따먹을 수 없는 과일/ ( )에 손잡이를 매달면 얼마나 멋진 부채가 될까?/ ( )은 어두운 골목을 하나도 빠짐없이 비추며 돌아다니는 고양이의 친구’ 장석주 시인의 시 일부분이다. 시 제목을 연상하는 수업을 실시한다. 과학 지식을 동원하면 금방 맞출 수 있다. 눈, 코, 입, 무릎, 가슴 등등 우리의 신체 기관을 소재로 쓰여진 시는 매우 많다. 고등학생들은 자신들의 몸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몸 철학을 주제로 한 수업은 그만큼 흥미도와 수업 몰입도가 높다.

• (3단계) 시와 과학의 만남: 다음은 시인가? 과학책의 구절인가?

과학책 중에는 시집이라고 착각할 만큼 시적인 문자들로 가득 찬 책들이 아주 많다. 이런 책들에서 한 대목을 잘라내어 학생들에게 제시하면서 “이 문장이 시인가? 과학책의 구절인가?‘ 질문을 하면 학생들은 헷갈려 한다. 예를 들어 『시크릿하우스』에 나오는 ‘립스틱’에 대한 구절과 서안나 시인의 시 「립스틱발달사」를 섞어서 제시하면 학생들은 시와 과학이 만나는 지점을 매우 흥미롭게 탐색하게 된다.

• (4단계) 시와 과학의 만남 : 김수영 「풀」은 과학적인가? 비과학적인가?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는 시구절이 과학적일까 비과학적일까 토론을 시켰다. 다양한 동영상을 통해 물리학의 파동, 중력파, 상대성 이론을 적용하면 매우 과학적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었다. 시와 과학은 ‘치밀한 관찰과 상상력’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수업이었다.

• (5단계) 손에 대한 100마일 사고 하기

100마일 사고는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브레인스토밍을 말한다. 7분 동안에 뇌폭풍을 일으켜서 10~30개 정도의 아이디어를 산출하도록 유도한다. 예를 들어 ‘다른 동물(새우, 거미, 문어 등등)의 손과 인간의 손 비교하기’, ‘손가락 마술, 손가락 춤 등의 사례를 떠올리기’ 등등이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떠올려보는 것이다. 발표를 시켜보면 기상천외한 생각들이 쏟아진다.

• (6단계) 시와 과학의 만남: 과학적 상상력(우주적 상상력)으로 시 창작하기

물리, 화학, 생명과학, 천체와 관련된 과학 용어를 사용하여 시를 짓도록 했다. 반드시 과학적인 수치, 공식, 현상을 넣어서 시를 창작하도록 유도했다. 은유법 또는 직유법을 반드시 넣어서 시를 짓도록 조건을 제시했다. 조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으면 수업 목표 달성 여부를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모둠별로 나누어서 아이패드를 이용해 자료를 검색하고, 토의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은 다음에 시 창작을 하도록 했다. 모둠별 시쓰기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모둠
관련교과
관련 단원-시 쓰기

1조
화학
전해질을 이용한 시 쓰기

산과 염기의 반응을 이용한 시 쓰기

2조
천체(우주)
달, 별, 태양에 대한 과학적 용어를 이용한 시쓰기

3조
천체(우주)
운동량, 충격량, 속력의 변화를 이용한 시 쓰기

4조
물리
돌림힘, 역학적 평형, 열역학 법칙을 이용한 시 쓰기

5조
생명과학
혈액성분, 염색체, 자극과 반응을 이용한 시쓰기



  

  

● 맺음말 - 눈동자에 담긴 별빛을 위하여 건배!

  

시인과 과학자가 함께 세미나와 워크숍을 열면 좋겠다. 시인과 과학자가 함께 우주 탐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좋겠다. 하늘은 매일 산책을 나온다. 밤하늘은 인류가 오랫동안 함께해온 문화유산이다. 인류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세상의 근원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호기심이 숱한 이야기를 만들었고, 철학을 낳았고, 과학자와 시인을 만들었다. 시인이여! 과학자와 함께 미지를 탐험하자. 아직 내가 모르는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당신의 눈동자에 담긴 별빛을 위하여 건배! (끝)

  

장인수

2003년 <시인세계> 등단. 시집 『유리창』, 『온순한 뿔』.

010-2241-5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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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베르 <제3 인류>를 읽고 [1]  장인수 13·11·26 3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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