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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_ 삶에 감사해요 (3)
 정한용    | 2010·04·09 23:55 | HIT : 6,479 |
  과연 그 공연은 어찌되었을까요? 민주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메르사데스 소사는 마치 밤하늘의 별과 같은 존재였으니 말입니다. 군부독재 6년 만에 소리 없이 끌려가 이슬처럼 사라진 사람의 숫자가 1만명을 넘어서고 있었고, 이것을 빗대 후세의 역사가들은 ‘추악한 전쟁 (the dirty war)’라고 이름 붙이는, 바로 그런 상황이었거든요. 소사는 그런 깜깜한 시대의 별빛처럼 아르헨티나 사람들 마음 속에 새겨졌던 것입니다. 루카치의 말대로, 아무리 어두운 밤에도 방향을 가리켜주는 별을 볼 수 있다면, 그건 행복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그렇게 민중의 함성과 함께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공연 초반에는 다소 긴장되고, 마이크가 잠깐 끊어지기도 했지만, 공연은 큰 문제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이 장면을 묘사한 글이 있어 인용합니다. (이 자료는 인터넷에서 받았는데, 지금 출처를 밝히려고, 아무리 다시 뒤져도 어디에서 온 것인지, 찾을 수가 없군요. 혹시 그 글을 쓴 분이 이 음악여행기를 읽으신다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녀 역시 설렘과 만일의 사태에 대한 걱정으로 공연 시작 전부터 이미 초긴장상태였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애써 청중을 외면하고 발치만 내려다보면서 근근이. 남들은 그녀를 타고난 카리스마의 소유자라고 하지만 감정이 북받쳐오를 때마다 별안간 목소리가 잠겨 이따금 곤욕을 치렀기에, 고대하고 고대하던 그 공연 순간 그런 상황이 재연될까 똑바로 청중을 바라볼 수 없었던 것이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모습이 보이자 청중은 5분 동안 우레 같은 박수갈채를 보내주었다. 문득 발밑에 거치적거리는 것이 있었다. 주변이 온통 선홍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잠시 어안이 벙벙했고 잠시 눈을 의심했다. 꿈인지 현실인지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꽃이었다. 빨간 카네이션이었다. 꽃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직도 서슬 퍼런 군부독재 치하에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공연에 나선 메르세데스 소사에 대한 청중의 감사표시였다. 그녀의 노래와 함께 가슴에 깊이 묻어둔 분노를 폭발시키고, 하늘 끝까지 자유와 정의를 외치고자 하는 사람들의 정성이었다.
  카네이션 레드카펫을 사뿐히 즈려밟고 선 메르세데스 소사는 말했다. “저는 메르세데스 소사, 아르헨티나인입니다.” 아르헨티나인인데 아르헨티나에서 공연할 수 없었던 그녀의 공연은 이렇게 막이 올랐다. 폐부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가 오페라극장을 휘어잡았다. 온몸으로 발산하는 열창이 거듭되었다. 청중은 혼연일체가 되어갔다. 갑자기 청중 속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끝이야. 군사독재는 끝날 거야.” 다시 모두가 하나가 되어 그 말을 함께 외치기 시작했다. 모두 함께 열병에 걸린 사람들처럼, 모두 함께 최면에 걸린 사람들처럼, 모두 함께 신들린 사람들처럼. 1982년 메르세데스 소사의 귀국공연은 그렇게 아르헨티나의 심장에서 군부독재를 뒤흔들어 놓았다.



  메르세데스 소사는 그녀의 수많은 공연 중, 가장 뜻깊은 공연으로, 바로 이 귀국공연과, 1999년 3월 3일 있었던 산타칼리나 공연을 꼽은 적이 있습니다. 귀국공연이야 당연히 그럴 만도 하지요. 당신이라면 안 그렇겠습니까? 이 얘기를 잠깐 할까요. 메르세데스 소사가 하나의 신화가 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를 알려주는 대목이니까요. 그의 위대함은 빼어난 가창력도 망명 경력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스스로를 낮추면서, ‘낮은 사람’들 곁에 스스로 머물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산타카탈리나는 볼리비아와의 국경 근처, 해발 3,800미터에 위치한 산간 오지의 작은 마을입니다. 소사의 공연이 아마도 거기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음악공연이었을 정도로 하찮은 마을, 가는 길조차 변변히 없는 마을, 황량함과 빈곤함이 전부였던 마을, 지도에도 표시조차 없는 마을. 이 마을을 찾았을 때, 마을 주민이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마을 1킬로미터 바깥까지 나와 환영의 춤과 노래를 선사했을 때, 그녀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래서 단 400명의 사람들을 위해서 온몸을 다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녀에게 ‘인류의 목소리’(La voz de la humanidad)라는 존칭이 붙은 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그런 사랑 때문이었지요.


  소사의 오페라극장 귀국공연은, 1982년 실황앨범으로 프랑스에서 두장짜리 LP판으로 나옵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그녀의 음반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죠. 프랑스 필립스판 음반은 [En Argentine]이라는 제목에, 모두 20곡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다양한 버전으로 발매가 되는데, LP가 CD로 바뀌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 장의 CD에 20곡을 모두 담을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폴리그램에서 찍은 CD에는 두곡이 빠지고 72분을 꼭 채워 18곡이 수록되었습니다. 요즘 우리가 흔히 구할 수 있는 음반으로 대개 정본으로 간주합니다. 한편 독일 드로피칼 레이블은 이 두곡을 넣으면서 오히려 중요한 4곡을 뺍니다. 한국에서 발매된 라이센스 음반은 폴리그램판을 음원으로 하면서, 자켓 사진은 필립스 원판의 사진을 쓰고 있습니다. 앞에 내가 올린 음반 사진이 바로 그것이죠.


  나는 이 공연실황 음반을, 가장 아끼는 10장의 음반 중 하나로 꼽습니다. 청중들의 환호소리와 메르세데스 소사의 열정에 찬 목소리가 빚어내는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실린 음악에는 남미 누에바 깐시온의 거장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실비오 로드리게스, 비올레타 빠라, 레온 히에꼬, 아따우알빠 유팡키, 아리엘 라미레스, 찰리 가르시아……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들입니다. 이 중에서 나는 당신에게, 단 한곡, 바로 [삶에 감사해요 (Grasias A La Vida)]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곡을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어, 이렇게 긴 얘기를 꺼냈던 것입니다.


  [삶에 감사해요]는 비올레타 빠라가 쓴 곡입니다. 아래 그 가사를 보면 알듯, 내 인생에 주어진 작은 모든 것들이 축복이 된다는 것일 텐데요, 이게 무슨 역설은 혹시 아닐까요? 빠라는 이 곡을 마지막으로 자살을 하고 맙니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면서, 지나간 삶의 아름다웠던 순간을 그렸던 것은 아닐까요? 자신의 어두운 앞날이 결코 어둡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이었을까요? 삶이란 것은 참 얄궂은 것이기도 하죠. 후에 이 곡은 메르세데스 소사를 통해 정말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 후에 수많은 가수들이, 아니 남미의 모든 민중들이 이 노래를 부릅니다.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내가 지난 1970년대 유신시절을 겪으며 불렀던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떠올립니다. [아침이슬]은 김민기 자신도 불렀고, 이후 여러 가수들이 불렀지만, 역시 양희은의 목소리로 들어야 제 맛이 나죠. 나는 그 노래를, 무심천 다리가 봉쇄되자, 맨발로 무심천을 건너면서 불렀던 장면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었다는 죄로 경찰에게 쫒기면서, 어느 선술집에서 나직이 불렀던 그 노래를,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메르세데스가 [삶에 감사해요]의 마지막에 이르러, 억눌렸던 울음을 참지 못하고 목이 멜 때,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
  



삶에 감사해요


이토록 많은 걸 준 삶에 감사해요.
삶은 내게 두 눈을 주어 세상을 보게 하였지요,
흰 것과 검은 것의 분명한 구별,
저 높은 천국을 배경으로 가득한 별,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의 여러 모습을.


이토록 많은 걸 준 삶에 감사해요.
삶은 내게 귀를 주어 모든 소리를 듣게 하였지요,
밤과 낮, 귀뚜라미와 카나리아 소리,
망치, 터빈, 개 짖는 소리, 샤워하는 소리,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이토록 많은 걸 준 삶에 감사해요.
삶은 나에게 소리와 글자를 주었지요,
그것으로써 내가 생각하고 표현하게
어머니, 친구, 형제, 타오르는 불빛과
내 사랑의 영혼이 가는 길을.


이토록 많은 걸 준 삶에 감사해요.
삶은 내게 두 발로 부단히 걷게 하였지요,
그 두 발로 도시와 물웅덩이,
해변과 사막, 산과 들,
그리고 당신의 집, 당신의 길과 당신의 안뜰을.


이토록 많은 걸 준 삶에 감사해요.
나는 삶의 틀을 흔드는 마음을 갖게 되었어요,
내가 인간의 두뇌 속 열매를 보았을 때,
내가 악에서 멀어져 선을 보았을 때,
내가 당신 눈길의 밑바탕을 보았을 때.


이토록 많은 걸 준 삶에 감사해요.
삶은 내게 웃음을 주고, 눈물을 주었지요,
그 즐거움과 고통을 구별함으로써
이 모든 재료들이 내 노래가 되어요,
그래서 당신의 노래와 꼭 같아져요.


당신 노래는 곧 내 노래가 되지요.




Gracias A La Vida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dio dos luceros que cuando los abro,
Perfecto distingo lo negro del blanco,
Y en el alto cielo su fondo estrellado,
y en las multitudes el hombre que yo amo.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el oído que en todo su ancho,
Graba noche y día grillos y canarios,
Martillos, turbinas, ladridos, chubascos,
Y la voz tan tierna de mi buen amado.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el sonido y el abecedario,
Y con el las palabras que pienso y declaro,
Madre, amigo, hermano y luz alumbrando,
La ruta del alma de el que estoy amando.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la marcha de mis pies cansados,
Con ellos anduve ciudades y charcos,
Playas y desiertos, montañas y llanos,
Y la casa tuya, tu calle y tu patio.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dio el corazn, que agita su marco.
Cuando miro el fruto del cerebro humano,
cuando miro al bueno tan lejos del malo.
Cuando miro el fondo de tus ojos claros.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la risa, me ha dado el llanto.
As yo distingo dicha de quebranto,
todos materiales que forman mi canto,
y el canto de ustedes que es es mismo canto.


y el canto de ustedes que es mi propio canto




  위에 가사를 찾아보니, 우리나라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에 나와 있는 것 대부분이 잘못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는 내가, 무모하게도 이런 저런 도움을 받아 다시 수정하고 새롭게 번역한 것입니다. 혹시 오류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자, 메르세데스 소사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좀 길었나요? 다음 시간에는 칠레의 저항가수 빅토르 하라에게 갈까합니다. 다시 짐을 추스르고 신발끈을 조여야 하겠군요. 그 전에 좀 쉬면서요. 밤이 깊어갑니다. 당신, 잘 자요.





한혜영 소사가 영웅이 된 것은 스스로를 낮췄기 때문이라고 하신 말씀에 공감... 그리고 그녀에게 깊은 존경을 표하는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토록 많은 걸 준 삶께 감사하는 마음... 이번에 듣는 노래 역시 가사도 모르지만 그냥 젖게 만드네요. 슬퍼요.

10·04·10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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