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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_ 삶에 감사해요 (2)
 정한용    | 2010·04·08 10:45 | HIT : 5,166 |
  메르세데스 소사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그녀는 1935년 7월 9일 아르헨티나 북서부 작은 도시 뚜꾸만(Tucuman)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중에 아따우알빠 유팡키(Athaualpa Yupanqui)의 유명한 노래 [뚜꾸만의 달]의 배경이 되는 바로 그곳입니다. 나는 유팡키의 그 노래를 들으며, 언젠가 뚜꾸만에 가서 환하게 뜬 달을 보겠다는 꿈을 하나 갖게 되었습니다. 뚜꾸만은 1816년 7월 9일 아르헨티나가 독립을 선포한 곳이며, 아르헨티나 전통문화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음유시인 유팡키가 소년시절을 보내며 인디오 전통을 몸으로 직접 경험하고, 자신의 음악적 뿌리를 확인하고 정신적 자양분을 흡수했던 곳이지요.


  소사의 조부는 께추아족 인디오였으며, 조모는 프랑스인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난 누이 코차가 푸른 눈을 가진 반면, 소사는 사진에서 보듯 전형적인 인디오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1950년 얼떨결에 라디오의 한 노래경연대회에 출연했던 것이 음악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1957년까지 소사는 그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었을 뿐이지만, 이 해에 첫 남편이자 역시 음악인인 마투스를 만나면서 자신의 일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결혼과 함께 남편의 고향 멘도사에 정착해서 음악인, 예술인들과 교류하게 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지요. 그녀는 1958년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1962년에는 몬테비데오로 이주해 새로운 환경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는 [불의 기억]의 저자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도 있었습니다. (그 멋진 책을 당신도 꼭 읽어보시길……) 이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녀는 차츰 예술가로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65년 코치킨 포크 페스티발에서 안데스의 전통의상을 입고 전통북인 봄보를 직접 연주하며 노래해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필립스사와 첫 음반 계약을 하게 되었고, 이로써 메르세데스 소사의 전설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악은 1960 년대 소위 ‘누에바 깐씨온 (Nueva Cancion)’ 운동과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그녀는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라 일컬어지는 비올레따 빠라(Violetta Parra), 누에바 깐씨온의 선구자 유팡키 등의 영향을 받아, 아르헨티나 쪽에서 누에바 깐시온의 중심인물이 됩니다. 누에바 깐시온은 라틴음악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잠시 그 역사적 맥락을 짚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아, 이 자리에서 아따우알빠 유팡키라는 인물로 자리를 옮기고 싶은 충동이 드는군요. 이 매력적인 거인은, 한 때 내 영혼을 흔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비올레타 빠라와 함께 안데스 지역의 전통음악을 채집하고 체계화함으로써, 소위 말하는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노래’ 운동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거의 반세기 동안 라틴 아메리카 음악가 중에서 그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음악가가 없을 정도로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유팡키에게 머물 수 없는 것이 유감이군요. 우리는 메르세데스 소사에게로 가야 하니까요.


  1963년 2월 메르세데스 소사는 멘도사로 잠시 돌아오는데, 고메스를 비롯한 멘도사 음악인들의 ‘누에보 칸시오네로 (Nuevo Cancionero)’ 선언에 동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르헨티나 음악사의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죠. 무엇보다도 이 선언은 그들이 추구하는 전통음악은 자연과 풍습이 아닌, 인간을 그 중심에 두고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한 전통음악이 골동품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것임을 부각시켰습니다. 인간을 중심에 두고 시대의 고민을 함께 어우르며, 현대성을 획득하고 변화를 지향함으로써 특정 장르에 갇히지 않음으로써, 전통/현대의 이분법적 잣대로 이들 음악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던 사람들의 편견을 깨뜨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앞에서 당신이 들었던 노래, 세사르 이세야가 작곡하고 아르만도 테하다 고메스가 작사한 [모두 함께 부르는 노래 (Cannción con todos)]는 누에보 칸시오네로의 상징과도 같은 노래였고, 이를 부른 메르세데스 소사는 단번에 이 노래운동의 중심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72년, 소위 고급예술의 성전으로 대중문화에 배타적이던 콜론극장에서 청중의 열광 속에서 [모두 함께 부르는 노래]를 부르며 사실상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노래꾼으로 공식인정 받습니다.


  누에바 깐시온 운동의 뮤지션들이 대부분 싱어송 라이터였던 것과 달리 소사는 작곡자는 아니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누에바 깐시온의 최고의 해석자로서 중심에 섭니다. 칠레의 비올레타 빠라와 빅토르 하라, 아르헨티나의 아리엘 라미레즈와 레온 히에코, 쿠바의 실비오 로드리게스와 파블로 밀라네스 그리고 브라질의 밀톤 나시멘뚜와 쉬쿠 부아르키 등 소사의 목소리를 통해서 이들의 노래는 마치 소사 자신의 말과 음악인 것처럼 완벽하게 해석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1970년대부터 소사는 비올레타 파라의 [삶에 감사해요 (Gracias a la vida)], 아따우알빠 유팡키의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Guitara di melo tu)], 빅토르 에레디아의 [살아가는 이유(Razon de vivir)] 등 누에바 깐시온의 스탠더드가 되는 노래들을 부르며 누에바 깐시온의 거인이라는 별칭을 얻습니다.


  1970년 세계 최초 칠레에서 선거를 통해 세워진 사회주의 정권인 아옌데 시절 이들 누에바 깐시온의 거장들은 가장 화려한 시절을 보내지만, 아옌데 정권은 오래가지 못했고, 1973년 군사 쿠데타로 인해 아옌데는 대통령궁에서 목숨을 잃습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에 2차 페론 정권이 들어서면서 여기로 누에바 깐시온 운동의 중심이 옮겨지게 되고, 메르세데스 소사는 단연 최고의 인기를 누립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도 1975년 군부 쿠데타에 의해 페론 정권이 무너지면서, 당연히 저항운동의 중심이었던 누에바 깐시온의 음악가들도 극심한 탄압을 받게 됩니다. 페론 정권의 흥망은 나중에 대통령 부인이었던 에바 페론의 이야기가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지면서 유명해지게 되는데, 아마 당신도 [날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여 (Don't Cry for Me, Argentina)]라는 노래를 들어보았을 거예요. 결국 1979년 메르세데스 소사는 한 극장에서 공연 도중 제자들과 함께 체포되어 추방당하게 됩니다.


  그녀는  망명시절 주로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활동합니다. 이후 1982년까지 존 바에즈, 밥 딜런, 해리 벨라폰테 등과 공연을 하며 아르헨티나의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저항운동을 세계로 전합니다. 전 세계는 소사의 목소리가 노랫말이 담고 있는 정서를 완벽하게 전달하는 능력을 지닌 하늘이 내린 선물이었다고 평가했고, 스페인어를 모르는 사람들도 소사의 목소리에 신들리듯 빨려 들어갔습니다. 망명 덕택에 그녀는 오히려, 아르헨티나를 넘어 세계적인 월드뮤직의 위대한 가수로 변신할 수 있었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녀의 몸속을 흐르는 인디오의 피는 조국 아르헨티나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죠.


  소사는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의 패배와 함께 군사정권이 몰락해가는 것을 보며 아르헨티나로 돌아갑니다. 아직 군부독재 체재가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구석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듯, 서슬 푸른 군부가 그녀에게 어떤 해코지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죠. 지인들은 그녀의 귀국을 말립니다. 하지만 그녀는 목숨을 내놓고 조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드디어, 1982년 2월 18일 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오페라 극장에서 역사적인 귀국공연을 갖습니다. 경찰들이 쫙 깔린 가운데,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듭니다. 민주화의 상징이자 월드뮤직의 스타인 소사를 보기 위해 시민들이 모여듭니다. 이 역사적인 공연을 취재하기 위해 전 세계의 언론이 귀를 기울입니다.


  이 공연은 무사히 끝났을까요? 소사는 어찌되었을까요? 다음 시간을 기다려주세요. 당신, 오늘은 아따우알빠 유팡키의 노래를 한번 들어보시죠. 우리 일정에 그를 만날 계획이 없으니 이 노래 한 곡으로 만족하여야 하겠네요. 메르세데스는 다음 시간에 다시 만나죠.






한혜영 노랫말이 담고 있는 정서를 완벽하게 전달하는 가수가 소사라고.... 스페인어를 모르는 사람들도 소사의 노래에 신들린 듯이 빨려들어간다는 말을 알 것 같아요. 그 음색이 정말 말할 수 없이 좋았어요. 유팡키 노래도 좋긴 한데 소사의 노래처럼 그런 짜릿한 느낌은 덜하네요. 너무 강렬하게 다가왔던 터라 그 흥분이 아직 가라앉질 않아서 그런가봐요. ㅎㅎ

10·04·08 12:54  

정한용 한샘께서 격려를 해주시니 글 쓴 보람을 느낍니다. 감사~~~ 예전에 유팡키의 음반을 구하려 별의 별 짓을 다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천신만고 끝에 불법 다운로드로 일부를 구했는데요......... ㅋㅋ......... 지금은 세월이 좋아, 그의 음반을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어요......

10·04·08 14:26  

한혜영 그러시라고 열심히 댓글을 달아요. 재미있게 읽고 듣는 사람이 있다는 걸 표시하면 글 올리는 분들이 한결 힘이 나겠지요. 그래서 제 특기가 댓글 달기랍니다. 하하 그게 다 제게로 돌아오거든요. 다음엔 더 좋은 글이 올라올 거니까요.

10·04·08 22:51  

김혜선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시 낭송을 듣고 있다는 느낌이네요.
허스키하면서 전혀 꾸미지 않은 목소리로 진솔한 삶의 한 페이지를 읽어내려가는 것 같은 .
대장님의 음악에 대한 넓은 지식에 감탄합니다.

10·04·09 15:23  

윤명숙 선생님 덕분에 새로운 세계의 음악을 새로운 음반이 점점 늘어나요.

10·04·09 21:46  

  
  04 _ 삶에 감사해요 (3) [1]  정한용 10·04·09 6480
  02 _ 삶에 감사해요 (1) [1]  정한용 10·04·05 4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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